해외에서 통하지만 국내에선 시들하다. 블랙핑크의 이야기다. 국내외 인기가 상호보완 관계로 팬덤을 공고히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블랙핑크의 국내 인기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현상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해외에서 위상은 가히 '여자 방탄소년단'이라 불릴만하다. 셀레나 고메즈와 협업하고, 작정하고 영어 가사로 부른 '아이스크림'(Ice Cream)은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3위로 차트인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튠즈에서도 총 20개국에서 1위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해당 곡은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에 16위로 진입했다. 뿐만 아니라 20위, 26위로 순위가 내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 음원 사이트에 대한 신뢰감이 이전만 못하다곤 하나, 앞서 블랙핑크가 신곡을 공개할 때마다 1위를 기록했던 것을 고려하면 아쉬운 수치다.
'아이스크림' 가사 대부분이 영어로 돼 외면받았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방탄소년단의 '다이나너이트'(Dynamite)의 전 가사가 영어임에도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블랙핑크는 빅뱅의 부재와 승리의 버닝썬 논란, 양현석 전 대표의 성매매 알선과 원정 도백 등의 혐의로 시끌했던 YG엔터테인먼트를 구했던 공주님들이었다.
지난해 1월 시작된 버닝썬 게이트로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3만 원대까지 하락했지만, 블랙핑크의 해외 승전보가 이어지면서 최근엔 5만 원 대 후반까지 주가를 회복했다. 시가총액도 1조 원을 돌파했다.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승리 탈퇴 후 4인조로 개편된 빅뱅의 복귀 무대였던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이 취소되면서, 소녀가장이 된 블랙핑크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 상태다.
블랙핑크는 빌보드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방탄소년단과 함께 케이팝(K-POP)의 인기를 이끄는 그룹으로 꼽히고 있다. 블랙핑크 유튜브의 구독자 수는 전세계 남녀 가수를 통틀어 3위고, 멤버 개개인이 각각의 경쟁사 브랜드 모델에 나설 정도로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블랙핑크 멤버 리사는 태국 국적으로 중국에서 원활한 활동이 가능하다. 리사가 중국에서 광고 모델과 출연료로 획득한 수익으로 YG엔터테인먼트 올해 상반기 중국 매출액은 지난해 연간 중국 매출액보다 높은 56억 원을 기록했다.
블랙핑크에 대한 기대감이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에 반영되면서 지난 3월 19일 1만9550원까지 떨어졌던 1주 가격은 5만 원 후반대까지 올랐다. 6개월 여 만에 3배 가까이 오른 것. YG엔터테인먼트는 올해 2분기 매출액 552억 원, 영업이익은 18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 역시 블랙핑크 일본 투어가 합해진 실적이다.
블랙핑크는 올해도 열일 모드다. 지난 5월 레이디 가가와 협업한 '사워 캔디'(Sour Candy)를 시작으로 6월 26일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을 발표했고, '아이스크림'까지 촘촘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10월 2일엔 데뷔 4년 만에 첫 정규앨범을 발표한다.
해외 시장에 대한 대놓고 겨냥한 야심도 숨기지 않고 있다. '아이스크림'은 블랙핑크를 데뷔 때부터 책임져 온 테디 뿐 아니라 24, 아리아나 그란데 등 여러 팝스타의 히트곡을 배출한 토미 브라운(Tommy Brown)과 미스터 프랭크(Mr. Franks)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해외 스타 스태프와 함께하며 글로벌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것.
하지만 직전 발표한 '하우 유 라이크 댓'이 해외 뿐 아니라 국내 주요 음원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해 '아이스크림'은 그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블랙핑크가 보다 전략적으로 활동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새 앨범 발표, 신곡 공개 등은 한국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투어의 시작도 한국이다. 이는 기본적인 정체성이 케이팝이기 때문.
블랙핑크는 그동안 해외 투어를 펼치면서 해외 활동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4대륙 23개도시 최대규모의 월드투어, 일본 3대 돔투어를 성료시켰고, 이를 토대로 블랙핑크의 활동 기반은 더욱 단단해졌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오랜만에 국내 활동을 시작한 '하우 유 라이크 댓' 역시 국내와 미국을 오가는 방송 스케줄은 2주 정도에 그쳤다.
한 엔터 관계자는 "해외 팬들의 규모가 커지고, 입김이 세져도 그래도 우리가 하는 건 '케이팝'이다"며 "국내팬덤이 단단해야 해외에서도 러브콜을 1번이라도 더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투어 수익이 커도 국내에서 앨범을 발표하고, 방송 활동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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