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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울’과는 거리가 멀던 직장인 정모씨(34)도 부쩍 한숨이 늘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직장생활 틈틈이 야구경기 관람 등 취미생활을 즐기던 그에겐 요즘이 악몽 같다. 정씨는 “사는 게 이렇게 재미없다고 느껴진 적은 처음”이라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생겨서 자꾸 인테리어 소품을 사게 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11일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지난 1월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보건복지부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에 몰린 상담 건수는 총 45만1704건이다. 작년 한 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우울증 상담 건수(35만3388건)를 훌쩍 넘었다. 감염을 걱정하는 불안·강박장애부터 고립감을 호소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실업이나 휴업·폐업 등 경제적인 고통을 털어놓는 사례도 많다.
상담 건수는 지난달 말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면서 눈에 띄게 늘었다. 이달 첫 주엔 2만2792건에 달했다. 지난달 셋째 주(1만1807건)보다 93% 급증했다. 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심리지원팀 관계자는 “코로나 우울에 대한 심각성이 커지면서 관련 질병코드를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공중보건위생국장을 지낸 비벡 머시는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책에서 “외로움은 하루 15개비 담배만큼 해롭다”고 했다. 그는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소통, 공감을 늘려야 한다”며 “외로운 경험 등을 주변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1인 가구이거나 지속적으로 소통할 지인이 없다면 인공지능(AI) 스피커나 반려동물, 반려식물 등을 활용하는 대안도 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AI 스피커 등 사람과의 소통을 대체할 장치를 마련하면 심리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화영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순천향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땀을 흘리고 심박수를 올리면 몸에 유리한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몸을 움직여주는 게 좋다”며 “매일 할 일을 정해놓고 이행하는 습관도 무력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치했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2주 이상 심한 무기력감이나 좌절감, 우울감 등이 지속된다면 상담을 받거나 병원을 찾아야 한다. 병원을 가는 게 부담스럽다면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무료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동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불안은 자책, 분노, 절망 등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초기부터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보를 자주 보면 우울이나 불안 증세가 심해질 수 있다. 심 부장은 “상담하러 오는 이들에게 SNS는 아예 앱을 삭제하고 보지 말라고 권한다”고 했다.
정지은/김남영/최다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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