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스토리텔링처럼…K팝 '세계관 구축' 열풍

입력 2020-09-15 17:26   수정 2020-09-16 00:56


CJ ENM이 제작하고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의장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는 지난 6월 방영 첫 회부터 ‘데미안 세계관’을 내세웠다. 7명의 보이그룹을 선발하는 이 프로그램은 소설 속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문구를 인용한 무대에 알을 형상화한 모형의 입장 게이트를 설치했다. 글로벌 아이돌 그룹이라는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알을 깨고 탄생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미션 내용도 자아 찾기를 향한 ‘만남’ ‘각성’ 등의 주제를 풀어냈다. 오는 18일 최종 선발을 앞둔 ‘아이랜드’ 팬클럽에는 15일 현재 235만 명 이상이 가입했다.

FNC엔터테인먼트는 다음달 6인조 신예 보이그룹 피원하모니의 데뷔와 함께 이들 앨범의 세계관을 담은 영화 ‘피원에이치(P1H):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극장에서 개봉한다. 분노와 폭력성을 극대화하는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다른 차원에 흩어진 소년들이 모여 희망의 별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정진영, 정용화, 설현, 유재석, 정해인 등 FNC 소속 스타가 총출동해 이들의 세계관 구축을 돕는다.
K팝 필수코스 ‘세계화 구축’ 바람
방탄소년단의 소년 성장 서사를 담은 ‘BTS 유니버스’의 세계적인 성공 이후 ‘세계관’을 아이돌 육성과 매니지먼트의 핵심 전략으로 채택하는 K팝 기획사가 늘고 있다. 빅히트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JYP엔터테인먼트의 스트레이키즈, KQ엔터테인먼트의 에이티즈 등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FNC는 피원하모니 데뷔에 앞서 그룹 멤버들이 출연한 장편 극영화를 먼저 선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월 방탄소년단의 성공 스토리를 다룬 기사에서 이들의 성공 요인을 ‘견고한 세계관’이라고 보도했다. “BTS처럼 탄탄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노래를 내놓은 것은 세계적으로 찾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세계관은 K팝 그룹이 앨범과 뮤직비디오 등에 담은 스토리텔링의 총집합이다. 앨범마다 짧은 스토리를 내놓아 거대한 서사를 완성해가는 세계관 전략은 신규 팬을 유인하는 동시에 기존 팬의 충성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TXT는 ‘꿈의 장’ 시리즈를 통해 자신과 다르면서도 닮은 친구를 만나는 소년들의 경험과 이들의 성장 서사를 그려낸다. 지난해 2월 데뷔 앨범에선 친구들을 만난 기쁨, 후속작 ‘마법’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험담, 지난 5월 발매한 ‘영원’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 소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트레이키즈는 데뷔 후 20개 앨범을 발매하는 동안 성장 서사를 실마리처럼 들려줬다. 이들의 세계관은 획일화된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진정한 나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담는다. 에이티즈는 2018년 10월 데뷔해 올해 초까지 ‘트레저(보물)’라는 큰 주제 아래 다섯 장의 앨범을 냈다. 마음속 보물을 찾아 항해를 시작한 젊은 청춘의 모험담이다. 곡의 가사와 뮤직비디오, 앨범 등을 통해 유기적인 이야기로 세계관을 소개한다. KQ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대중음악계가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차별화한 콘텐츠인 ‘세계관’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팬들에게는 ‘우리끼리 아는’ 이야기에 대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형성해 팬덤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일반 청중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해 핵심 팬으로 유입되는 관문이 될 수도 있다.
게임, 영화 등 콘텐츠 확장의 지렛대
K팝의 세계관은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빅히트 관계자는 “탄탄한 세계관이 구축되면 그것을 구심점으로 드라마 게임 웹툰 등 확장성이 무한해진다”고 말했다. 빅히트는 올초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담은 소설 ≪화양연화 더 노트≫를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출간해 약 20만 권을 판매했다. 방탄소년단의 스토리텔링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신작 게임 프로젝트도 넷마블과 함께 준비 중이다. 또 국내 유명 제작사와 함께 방탄소년단 세계관에 기반을 둔 드라마를 제작해 내년 하반기 공개할 예정이다.

FNC의 영화 ‘피원에이치’는 K팝 그룹의 음악적 세계관을 담은 ‘K팝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새 장르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창감독은 “K팝과 K시네마를 융합해 이들의 차별화한 전략인 음악적 세계관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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