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터키의 금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3% 증가한 150억달러였다. 국민들 사이에서 금을 사재기하려는 수요가 폭증하면서다. 이스탄불에서 금 거래의 중심지로 꼽히는 그랜드바자르 기준 일평균 금 판매량은 예년의 10배 수준인 약 6만5600트로이온스(1트로이온스는 약 31.1g)까지 치솟았다. 금을 보관하는 금고 수요까지 덩달아 급증했다.
터키 국민들이 집에 보유하고 있는 금은 3000~5000t으로 추정된다. 1900억~3100억달러어치에 이른다. 터키 연간 금 생산량의 25~40%에 해당하는 규모다. 반면 시중은행의 골드뱅킹 등에 예치된 금 규모는 지난달 말 기준 330억달러어치에 불과하다. 지난 5월 터키 정부가 금 매입 시 세율을 0.2%에서 1%로 올리면서 국민들이 은행을 피해 암시장 등에서 더 활발하게 금 거래를 하게 된 여파도 있다.
터키 국민들의 금 사재기 열풍은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책 실패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중앙은행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금리 정책을 밀어붙였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지난 1년 동안 15.75%포인트 인하돼 현재 연 8.25%다. 지난달 인플레이션율 11.77%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경제 위축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리라 가치는 올 들어 미국 달러 대비 20% 이상 떨어졌다. 중앙은행은 외환시장에서 리라를 사들이며 환율방어정책을 펼치다 결국 외환보유액만 대폭 축내 위기를 가중시켰다. 코로나19 여파로 관광산업이 타격받으며 올 2분기 터키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9.9%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경제 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리라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하락하자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강등(B1→B2)과 주요 교역 상대인 유럽연합(EU)의 제재 가능성까지 악재로 떠올랐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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