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등록금으로 투자할 만큼 젊은이들이 미국 우량주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글이다. 이글은 커뮤니티에서 많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다른 20대 투자자는 “국내에는 장기 투자할 주식이 마땅치 않아 미국 애플 주식을 샀다”는 글을 남겼다.
20~30대 밀레니얼 세대가 ‘동학개미’의 해외 원정을 주도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이 지난 3~8월 해외 주식을 산 투자자 연령대를 조사한 결과, 미국 반도체 설계기업 AMD를 매수한 사람의 71.5%는 20~30대였다. 애플(67.6%) 테슬라(63.7%) 마이크로소프트(63.1%) 엔비디아(61.1%) 넷플릭스(60.8%) 등 다른 기술주도 신규 투자자의 60% 이상이 2030세대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 밀레니얼들도 삼성전자 등 국내 우량주에 관심을 가졌다. 망하지 않을 회사, 성장할 회사를 찾았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기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판단했다. 영어와 기술주에 익숙한 밀레니얼들은 자연스럽게 해외 투자 붐에 올라탔다. 그리고 ‘원정 개미군단’의 맨 앞자리로 나섰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 부부장은 “젊은 층은 어릴 때부터 외국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해 해외 투자를 어렵게 느끼지 않는다”며 “코로나19는 이들이 갖고 있던 해외 투자에 대한 관심을 실행에 옮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해외 투자는 개별 종목에 그치지 않는다. 이 기간 NH투자증권을 통해 TVIX 상장지수증권(ETN)을 순매수한 사람 가운데 73.7%는 2030세대다. 이 ETN은 미국 증시 변동성지수(VIX)의 두 배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 등락을 각각 반대방향, 정방향으로 세 배씩 추종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쇼트 QQQ’ 상장지수펀드(ETF)와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 ETF를 순매수한 사람도 각각 72.2%, 67.5%가 청년층이었다.
다른 증권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같은 기간 KB증권을 통해 애플을 순매수한 사람의 60.4%는 이들 연령대다. 니콜라(57.7%), 마이크로소프트(56.1%), 테슬라(55.5%), 엔비디아(52.1%) 등에서도 2030세대 투자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증권사들도 미래의 큰손이 될 밀레니얼 세대를 향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현기성 KB증권 글로벌BK솔루션부 차장은 “2000년대까지는 해외 투자를 중개하는 증권사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해외 종목에 대한 투자자의 접근이 한층 쉬워진 것도 젊은이들의 해외 투자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열린 ‘제2회 뱅키스 대학생 모의투자대회’에서 해외 투자 부문을 신설했다. 젊은이들의 관심을 반영한 결과다.
이런 관심의 이면에는 지난 10년간의 경험도 작용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 부부장은 “2008년 이후 코스피지수는 박스권에 갇혀 있지만 미국 증시는 계속 올랐다”며 “젊은 층이 미국 증시에 투자해 한 달 만에 크게 오르는 걸 경험하고 나면 국내 증시에는 잘 안 들어오려고 한다”고 전했다.
2030세대의 해외 투자를 분석해 보면 세대적 특징인 ‘고위험 고수익’ 추구 성향도 강하게 나타난다. 올 들어 NH투자증권을 통해 미국 크루즈업체 카니발을 순매수한 사람의 73.8%는 이들 연령층이었다. 항공사 델타항공(70.5%)과 보잉(67.8%)도 마찬가지다. 여행 및 항공은 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받은 업종이다. 젊은 층이 많이 사들인 TVIX ETN, 프로셰어즈 울트라쇼트·프로 QQQ ETF도 고위험 상품이다.
인원수에 비해 금액은 적은 편이다.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은 20%대에 그쳤다. 투자자 수 기준으로 40~70%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낮다. 엔비디아(35.4%), 애플(40.2%), 테슬라(41.7%), 니콜라(47.9%) 등 다른 미국 증시 주도주도 투자 금액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하다. 기성세대보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간이 지나 이들이 경제활동의 주축으로 부상하면 해외 투자 금액도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종목이 상장된 국가가 어디인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지금은 청년층의 해외 투자 대부분이 미국으로 쏠렸지만 중국, 일본 등 다른 시장이 부각되면 자금이 더 들어가면서 이런 흐름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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