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야기] 온디맨드 비즈니스와 혁신의 역설

입력 2020-09-21 09:00  


백성들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한 꼬마가 소리쳤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다. 옷을 좋아하는 임금님에게 두 명의 재봉사는 총명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화려한 옷감으로 특별한 옷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들은 텅 빈 베틀만 연신 움직여댔지만, 신하들은 자신들이 자격 없는 사람으로 여겨질지 몰라 아주 훌륭한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임금 역시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신하들과 같은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신하들의 찬사를 받은 후 기념 행진을 시작했다.
네트워크 효과와 독점 추구
오늘날 플랫폼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관점은 마치 재봉사의 말을 믿은 임금 및 신하와 유사하다. 어떤 측면을 비판하려다가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까 주저하게 된다. 이는 플랫폼 비즈니스는 혁신적이라는 이미지에 기반한다. 하지만 실상은 꼭 이와 같지 않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노동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면서 가치를 창출한다. 과거에는 신뢰할 만한 제3자의 중개가 있더라도 거래 상대방인 서비스 공급자(노동자)와 소비자가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던 탓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평점이나 리뷰, 별점으로 이뤄지는 서비스 평가는 거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안심하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서비스 공급자는 소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이면에서 평가시스템은 노동자를 통제하고, 소비자와 노동자를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노동자는 다른 플랫폼에서 평판을 다시 쌓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소비자들은 익숙한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경쟁력은 네트워크 외부효과에서 창출되기에 플랫폼 기업은 평판이라는 수단으로 수요자와 공급자를 이탈하지 못하게 막는다. 아마존에 대항하려는 경쟁자는 엄청난 물류창고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지만, 플랫폼 사업자가 기존 사업자와 경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앱뿐이다. 이는 자신과 같은 경쟁자의 위협에 노출돼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평판을 통한 네트워크 외부효과의 창출 노력은 자신과 같은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독점화 전략의 일부인 것이다.
혁신의 역설
독점보다 우려스러운 일은 온디맨드를 표방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 자체가 혁신 투자의 유인을 감소시킨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즉각적으로 맞춤형 서비스가 제공되는 온디맨드 비즈니스에서는 일거리를 작은 과업으로 쪼개 많은 노동자에게 나누어 완성시킨다. 특별한 기술이나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 업무 영역이 쪼개지자 누구든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쪼가리 업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동 공급이 수요보다 많게 됐고, 이는 일거리를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졌다. 경쟁은 임금을 낮추고, 수요자에 대한 협상력을 약화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 기업은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유치에 투자할 유인이 없다. 저렴한 노동력으로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창고를 자동화할 필요도, 종업원을 터치스크린으로 교체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영국 더럼대학교의 경제사학자인 던컨 바이텔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외주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고, 낮은 임금 문제에 직면하는 것은 기계가 그들을 대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동화와 혁신이 반드시 노동자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혁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시기를 막론하고 한국에서 ‘성장’의 가치는 매우 중요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플랫폼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기구가 신설돼 ‘혁신 성장’을 지원했다. 학계와 시민사회도 한목소리로 이를 지지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혁명’, ‘온디맨드 경제’, ‘긱 이코노미’ 등과 같은 현상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은 마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의 신화와 임금처럼 말이다.

분명 디지털 전환 시대의 핵심 요소인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 인공지능(AI), 디지털 플랫폼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은 이전 시대에 찾아볼 수 없었던 커다란 혁신의 원천이다.

하지만 ‘온디맨드’, ‘긱 경제’라고 불리는 비즈니스 모델은 혁신이라 부를 수 없는 특징을 내포한다. 우버의 인기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 파이낸셜타임스는 ‘벌거벗은 택시 유니콘 기업’이라는 기사를 통해 오늘날 혁신이라 불리는 서비스는 전화로 부르던 택시를 앱이 대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 이면에 놓인 잘게 쪼갠 과업, 이를 수행하려는 수많은 비숙련 노동자, 강력한 중개자와 이로 인한 열악한 근로조건은 지난 수백 년간 목격된 문제들이며, 오늘날의 디지털 전환으로 발생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는 이런 문제를 조직과 제도를 활용한 고용 안정성의 보장을 통해 해결해왔다. 해체와 단편화가 아니라 노동규범의 정립을 통해 혁신 요소인 창의성과 기업 투자를 이끌어낸 것이다.

앞으로 확산될 온디맨드 비즈니스 요소들을 혁신의 밑거름으로 활용하기 위해 현상이 아니라 실체에 초점을 맞출 때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규범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포인트
맞춤형 서비스인 ‘온디맨드’는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 독점 추구
플랫폼 노동자 보호 장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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