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을 피하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급히 뛰어 오르다 갑자기 쓰러져 숨진 간호조무사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8부(김유진 이완희 김제욱 부장판사)는 숨진 간호조무사 A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라"고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서울 소재 한 산부인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A 씨는 2016년 12월 아침 출근길에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당시 병원의 정식 근로시간은 오전 9시부터였지만 실질적인 출근 시각은 8시30분이었고, 그날 오전 8시40분께 병원 건물에 도착한 A 씨는 지각으로 인한 급한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통해 자신이 근무하는 3층까지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다.
A 씨의 유족은 심장질환을 앓던 A 씨가 지각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황급히 계단을 오르다가 육체적·정신적으로 부담을 받아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1심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행위로 인한 신체적 부담, 지각에 대한 정신적 부담의 정도는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하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또 "병원이 출근 시각을 30분 앞당긴 관행도 A 씨가 사망하기 훨씬 전부터 시행된 것이라 예측 불가능한 급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A 씨가 전적으로 기존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오히려 과중한 업무로 인해 누적된 스트레스가 지병의 발현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A 씨가 맡은 산부인과 진료 보조 업무가 병원 내에서 기피 대상일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았다는 점에서 근무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라면서 "당시 병원에서는 오전 8시30분 조회에 불참하는 경우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A 씨에게 지각에 대한 정신적 부담은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A 씨는 상사의 질책을 우려한 나머지 조금이라도 빨리 3층에 도착하기 위해 계단을 급히 뛰어 올라갔을 것"이라며 "이 행위도 사망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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