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는 열린 텍스트입니다. 읽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그 뜻이 다 다르게 받아들여져요. 일상의 가르침이 될 수도, 기업 전략의 힌트나 교육학 교재가 될 수도 있죠. 2500년 넘게 살아남아 고전이 된 이유입니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사진)은 지난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낸 박 원장은 동양 고전의 대중화를 주창해 왔다. 지난달에는 논어를 학습, 성찰, 관계, 사랑, 예악, 군자, 인재, 정치, 공자와 제자들 등 9개 주제로 순서를 재구성한 ?1일 1강 논어 강독?(김영사)를 펴냈다. 구절마다 원문과 번역문, 독음, 해설을 담았다. 박 원장은 “춘추시대의 역사와 정치, 풍습 등도 같이 묶어 각 구절의 실제 의미를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풀었다”며 “당시의 시대상을 모르면 텍스트 속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자를 신도, 성인도 아닌 한 ‘사나이’로 접근하고 싶었다고 했다. “공자는 세간에서 인식하는 수구론자나 복고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학문과 능력을 펼쳐 춘추시대의 혼란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던 학자이자 정치가있죠. 공자의 가르침은 수천년 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제대로 등용되지 못했다는 한이 많았을 겁니다.”
박 원장은 “논어 속의 공자는 유연하고 포용력도 뛰어나다”고 평했다. 공자는 제자들을 받아들일 때 나이나 신분을 따지지 않았다. 그가 가장 사랑한 제자 안회는 천민 출신이었다. 여성을 비하한 기록도 없다. 그는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는 말은 후대에서 창작해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단언했다. “공자와 함께 다닌 제자와 식솔들 중 여성이 없었을까요? 논어에 공자가 제자 2명을 각각 사위, 조카사위로 맞는 내용이 나옵니다. 만약 여성을 차별했다면 공자의 딸과 조카딸 이야기가 비중있게 남겨질 이유가 없었겠죠.”
그는 “유(儒, 공자와 제자들, 공자의 가르침을 뜻함)의 원형이 살아나려면 유교(儒敎)란 말이 없어져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주희의 성리학이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도 권력의 이데올로기이자 종교로 숭배되면서 죽어버린 유의 개방적 실학(實學)정신을 되살리려면 교(敎)란 말을 떼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3000년 후의 모습도 예측할 수 있다(百世可知)”는 논어 구절을 언급했다. “1세(世)가 30년이니 100세는 3000년입니다. 선대의 예(禮)에서 무엇을 버리고 얻었는지 계속 지켜본다면 앞날도 능히 내다볼 수 있다는 뜻이죠. 핵심 정신은 유지하되 파괴적 혁신을 지속해야 한다는 공자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우린 너무 오랜 세월 공자의 미래지향적 사상을 ‘공자 왈’ 속에 가뒀습니다. 이젠 바뀌어야죠.”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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