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야당도 경제단체도 다 죽었다

입력 2020-09-24 17:18   수정 2020-09-25 00:15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뭐라고 말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 같아 신물이 난다. 요즘 화나게 하는 것은 명색이 제1야당이라는 국민의힘이다. 여당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을 총선공약으로 내걸기라도 했다. 문제는 지난 총선공약과 반대로 가는 제1야당이다.

국민의힘은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첫 번째 정책공약으로 ‘경제 재설계 미래 재도약’을 내걸었다. 맨 앞에 나오는 게 경제 활성화로, 제1 실천과제가 ‘기업 경영의 자유를 확대하는 공정한 시장 조성’이었다. 자신들이 말하는 ‘공정’이 여당의 ‘공정’과 혼동될 것을 우려했는지 그 이유까지 적시했다. “현행 ‘독점금지 및 공정거래법’은 독점금지는 부차적인 목적이며, 기업의 규모 및 경제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사전적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에서 사후 규제 및 경쟁촉진 정책으로 전환해 기업활력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내세운 약속이 대기업집단 지정제도와 시장지배적 남용행위 기준, 지주회사 규제 등의 개선이었다.

이런 국민의힘이 총선이 끝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돌변했다. 민주당의 총선공약 슬로건인 ‘더 나은 미래’를 흉내 낸 듯한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이라며 여당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를 새로운 강령·정책에 집어넣었다. 대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정부 여당의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한 꼴이다. 여야 정치적 담합에 가뜩이나 코로나19, 미·중 충돌 등으로 혼란스러운 기업들만 깊은 불확실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제1야당이 당명을 바꾼 건 그렇다 치자. 강령·정책은 다르다. 특히 그 방향이 총선공약과 어긋난다면,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이 수긍할 설명이라도 내놔야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정당이 어떻게 저리도 뻔뻔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미래변화를 위한 경제혁신’을 기본정책에 넣었다고 민주당과 다르다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업이 준법체계 등 규제를 스스로 제안하게 하고, 사전 금지 관행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의 ‘우선허용·사후규제’로 전환한다”고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혁신’을 앞세워 놓고 뒤에서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기업을 규제하겠다는 여당과 판박이다.

이 모든 배경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를 썼다. ‘지금 왜 관치인가’로 고쳐야 할 정도로 편집증 같은 게 느껴졌다.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 금지를 뛰어넘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렇다.

2020년 《영원한 권력은 없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영원히 필요한 건 ‘경제 위에 정치가, 기업인 위에 관료가 군림해야 한다’는 법칙뿐임을 말하고 싶은 듯했다. 정치와 정부 앞에서 굽신거려야 할 기업과 기업인이 이런 법칙이 위협받을 정도로 커지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제1야당은 죽었다. 그렇다면 경제단체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당당하게 해야 할 말조차 못 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슈퍼여당이 탄생하면서 민주당의 총선공약은 시한폭탄이 됐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뿐 아니라 법무부가 들고나온 집단소송제 확대, 징벌적 손해배상제 범위 확대가 다 그렇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규제 바이러스’가 퍼지는 동안 경제단체들은 뭘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경제단체들이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일부 조항의 보완을 요구했다는 후문은 스스로 사이비·들러리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장(長)이란 자리를 감투나 폼 잡는 용도로 여기는 인사들이 이끄는 경제단체, 관변·시민단체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경제단체가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서야 부랴부랴 소동을 피우는, 그것도 비굴한 모습이나 연출하는 경제단체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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