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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지난 21일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8급 공무원 A씨(47)를 북한 해상에서 사살한 뒤 그 자리에서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태운 것으로 파악됐다. 군사 접경지역에서 대한민국 국적 민간인이 북한군의 공격으로 잔인하게 살해되면서 남북 관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24일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A씨)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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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 차원에서 접경지역에 무단 접근하는 이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북한군의 이런 행위는 국제규범과 인도주의에 반한 행동으로 우리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북한은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는 한편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가 공들이고 있는 남북 관계 개선도 당분간 동력을 잃을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NSC 상임위 회의 결과와 정부 대책을 보고받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군사 접경지역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우리 국민이 총격으로 살해됐지만, 군은 2018년 9월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맺은 9·19 군사합의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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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6시간이 흐른 오후 9시40분께 북한 단속정이 나타나 A씨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운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6시간 동안 북한군 감시를 받으며 해상에 그대로 머문 상태였다. 군 관계자는 “총격 직전에 북한군 상부의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본다”며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접경지역 무단 침입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A씨가 북측 해역에서 처음 발견된 정황을 인지한 순간부터 총격을 받기까지 6시간 동안 우리군이 북한과의 연락조차 시도하지 않는 등 적절히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만행을 예상하지 못했다”며 “북측 해역에서 사건이 발생한 데다 우리 군 첩보 자산이 노출될 우려 등의 이유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해양경찰은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를 현장조사했지만 A씨의 월북을 추정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해경은 언론 브리핑에서 실종자의 침실 등 선내를 확인한 결과 개인수첩, 지갑, 기타 소지품은 확인했으나 유서 등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어업지도선 내 폐쇄회로TV(CCTV) 두 대를 확인했으나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아 실종자 동선도 파악하지 못했다. 해경은 휴대폰 수·발신 통화내역과 금융·보험 계좌 등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A씨 주변에선 월북할 동기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직장 동료 사이에선 “빚 때문에 파산 신청을 고려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두 자녀를 둔 평범한 40대 가장이 북한행을 택할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었다고 전해졌다. 관련 조사를 진행한 인천 해양경찰서 역시 A씨가 유서 등 월북 징후를 전혀 남기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건을 ‘제2의 박왕자’ 사건으로 명명하고 공세를 폈다. 배준영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정부가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 제안 이벤트에 국민의 생명을 뒷전으로 밀어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정호/임락근/인천=강준완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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