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공여한도는 중소기업에만' 비현실적 규제에…증권사 신용공여 45조 '낮잠'

입력 2020-09-24 17:22   수정 2020-09-25 02:13

자기자본 3조원이 넘는 대형 증권사(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이 대출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신용공여 한도를 절반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로 부여된 신용공여 한도를 중소기업에 대해서만 쓰도록 묶어놨기 때문이다.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말 기준 8개 종투사의 신용공여액은 35조9억원으로 집계됐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원칙적으로 자기자본의 100% 이내에서 투자자 신용공여(주식담보대출 등) 및 기업금융 관련 대출을 할 수 있다. 다만 자기자본 3조원을 넘겨 종투사로 지정되면 기업에 대한 직접대출은 물론 중소기업 및 기업금융 업무에 한해 자기자본의 200%까지 신용공여를 할 수 있다. 투자은행(IB) 육성 차원에서 일정 수준 이상 자본력을 갖춘 대형 증권사에 대해서는 은행처럼 기업대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8개 종투사의 자기자본 합계는 6월 말 기준 40조2084억원이다. 신용공여 한도(자기자본의 200%)는 80조4168억원에 달한다. 종투사들은 이 중 43.5%가량만 신용공여에 사용했다. 쓰지 않고 남은 한도는 45조4159억원에 이른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의 신용공여액은 6조2554억원으로 사용률이 36.8%에 그쳤다.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다른 증권사도 50%를 밑돌았다.

증권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규제 탓에 신용공여 한도를 마음껏 활용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종투사 지정으로 늘어난 신용공여 한도(자기자본의 100~200% 구간)는 중소기업과 기업금융 업무에만 써야 한다”며 “은행에 비해 여신업무 관련 전문성이 떨어지고 조달 금리가 높은 증권사들이 리스크가 큰 중소기업 대출을 무턱대고 늘리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자 추가 신용공여 한도를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부동산금융에 활용하는 증권사도 생겨났다. SPC는 상당수가 명목상 중소기업으로 분류돼 추가 신용공여 한도를 적용받을 수 있다. 6월 말 기준 종투사의 중소기업인 부동산 SPC에 대한 신용공여액은 1조4436억원으로 작년 2월(6977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연초 업무 계획에서 종투사의 고유재산(PI) 투자 활성화를 위해 신용공여 추가 한도에 중견기업을 포함하고 SPC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은 제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달 초 내놓은 뉴딜금융 지원 방안에는 종투사가 추가 신용공여로 뉴딜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업계에서는 “애초에 비현실적인 규제를 해놓고 상황에 따라 정부 입맛대로 신용공여 한도를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윤 의원은 “당국이 투자 활성화를 위해 자본력을 갖춘 대형 증권사에 신용공여 추가 한도를 부여해 놓고도 사용처를 중소기업에 한정해 45조원이 넘는 자금이 방치되고 있다”며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보다 생산적인 영역에 지원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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