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규제 3법'에 포함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한진칼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법 개정안이 조 전 부사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손발을 묶는 법'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25일 한국경제신문이 정부의 상법 개정안을 경영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칼 사례에 적용한 결과,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 측의 경영권 공격을 방어하는 게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조 회장은 현재 KCGI·반도건설과 연합한 조 전 부사장 측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 회장 측 지분율은 43.83%, 조 전 부사장 측 지분율은 45.23%로 조 전 부사장 측이 우세하다.
조 회장 측이 조 전 부사장 측보다 지분이 적은데도 현재 경영권을 방어하고 있는 것은 현행 상법에 따라서다. 먼저 조 회장은 지난 2019년 조 전 부사장 측인 KCGI(강성부펀드)의 주주제안을 상법에서 보장하는 지분 '6개월 의무 보유' 조항으로 막아냈다.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 측이 6개월 의무 보유 기간을 채우는 동안 경영권 공격에 대비할 수 있었다. 이 기간 조 회장은 협력 관계인 델타항공의 지지를 끌어내며 10.0%의 우호지분을 확보했다.
지난 3월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은 사실상 경영권 분쟁 1라운드를 벌였다. 조 회장의 승리였다. 조 전 부사장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4명은 모두 부결됐다. 반면 조 회장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5명은 과반 찬성으로 통과됐다. 당시에는 조 회장 측 40.39%, 조 전 부사장 측 28.78%로 조 회장 측이 우세했다. 델타항공 덕분이었다. 델타항공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분을 6개월 이상 의무 보유하지 않아도 주주제안 등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주식 매입 뒤 명의가 바뀌는 3일 뒤에 경영권 공격이 가능하다. 만약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었다면,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 측의 공격을 쉽게 방어하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이후 지금까지 총 지분율을 45.23%로 끌어올렸다. 조 회장 측은 43.83%로, 조 전 부사장 측보다 1.4% 부족하다. 당장 표 대결에 들어가면 조 전 부사장 측이 유리하지만, 현행 상법상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이사회에 자기 사람을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이사로 앉히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을 의결해야 한다. 사외이사 가결 요건은 참석 주식의 과반수 찬성이기 때문에 조 회장 측이 지분이 부족해도 국민연금(약 2.9%) 등의 지지를 받으면 조 전 부사장 측의 사외이사 선임을 저지할 수 있다. 조 전 부사장 측이 우호지분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가정할 때, 조 회장은 1.4% 초과 지분만 확보하면 된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조 전 부사장 측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를 활용해 경영권 공격이 가능하다. 감사위원은 기업 활동을 감시·감독하면서 사내 이사인 경영진과 같은 권한을 갖는 자리다. 상법 개정안에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도입과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만을 합산하는 '3%룰'이 강화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는 '사외이사 선임→감사위원 선임' 순서로 감사위원을 뽑는다.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역시 '주주별' 3%로 제한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한 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단독으로 선임할 수 있는데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은 하나로 묶어서 3%로 의결권을 제한하도록 했다.
상법상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의 지분까지 포함한다. 현재 주주별 지분율로 따지면 델타항공(14.9%), 그레이스홀딩스(12.92%) 등이 조 회장(6.52%)보다 많다. 하지만 조 회장이 여전히 최대주주인 것은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치면 지분율이 28.93%로 가장 많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할 때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묶어서 3%로 제한된다. 조 전 부사장도 조 회장과 가족인 특수관계인이기 때문에 함께 묶여 3%룰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조 전 사장 지분 제외)의 의결권 행사 가능 지분율은 2.33%로, 결국 조 회장 측은 델타항공 몫을 포함 총 5.33%의 지분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과 연합한 KCGI와 반도건설 측은 합산 3%룰 적용 대상이 아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조 전 부사장을 제외하고 합산 3%룰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행사 가능한 의결권 지분율이 훨씬 높다. 거기에 조 전 부사장 측인 KCGI는 유한회사 설립을 통해 지분 대부분의 의결권을 유효하도록 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현재 한진칼 주식을 들고 있는 KCGI 측의 유한회사는 8개에 달한다. 조 전 부사장과 손잡은 반도건설 역시 대호개발, 한영개발, 반도개발 등 3개 주식회사로 지분을 분산한 상태다. 이에 따라 조 전 부사장 측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17.44%에 달한다.
결국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감사위원 분리 선출 시 조 회장 측과 조 전 부사장 측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의 지분율 격차는 12.11%로 벌어진다. 현재 대한항공의 소액주주 비율은 10.94%로, 소액주주가 조 회장의 손을 모두 들어준다고 해도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한 쪽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상법 개정안은 조 회장의 손발을 묶는 법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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