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車, 가속이냐 제동이냐…美 대선이 가른다

입력 2020-09-25 17:15   수정 2020-09-26 02:45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35년부터 휘발유 신차의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세계 자동차 업계가 들끓고 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23일 완성차 업체들에 전기나 수소를 동력으로 이용하는 배출가스 제로 승용차와 픽업트럭을 점차적으로 많이 생산해 판매할 것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자동차업계는 당장 반발하는 모양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최대 자동차 시장이다. 지난해 200만 대가량의 신차가 팔려 판매 비율이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의 11%를 차지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 비중은 약 8%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내연기관 차량이다. 앞서 캘리포니아주는 자동차업계에 전기차를 판매할 경우 판매 대수의 9.5%에 해당하는 크레디트(배출권)를 획득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내년부터 EU 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배기가스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그동안 허용치가 ㎞당 130g이었으나 이보다 30% 줄어든 95g으로 대폭 감축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1g에 대해 2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영국의 PA컨설팅은 현재 유럽에 있는 13개 자동차 회사가 적극적으로 이산화탄소를 감축하지 않으면 내년에 총 154억유로(약 21조360억원)의 벌금을 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서 이 기준을 맞출 수 있는 차량은 전기차 외에는 없다. 독일 폭스바겐만 하더라도 ㎞당 평균 109.3g의 배기가스가 나와 45억유로의 벌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이는 한 해 영업이익의 25%에 이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요타자동차는 배출량이 95.1g으로 적은 편이지만 판매 대수가 많아 한 해 벌금 액수가 22억엔이나 된다고 보도했다.

EU는 한걸음 나아가 해외에서 수입되는 모든 상품에 대해 배출권 구입을 의무화하는 국경탄소세 도입을 확정했다. 내년에 구체적인 안을 확정한 뒤 2023년부터 적용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 업계 환경 규제로 몸살
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글로벌 환경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산화탄소 감축을 결정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발효된 이후 세계 각국이 규제를 강화하면서 가솔린이나 디젤 등 내연기관차를 주로 만들고 전기차 생산이 늦은 기업일수록 타격이 심하다. 전기차를 아직 생산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벌금을 내지 않으려면 테슬라 등 전기차 전문업체로부터 크레디트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프랑스 피아트는 지난해 테슬라와 계약을 맺고 배출권을 사들이기도 했다. 피아트는 유럽 자동차 업체 중 전기차 생산에서 가장 뒤처져 있다. 피아트의 탄소 배출량은 ㎞당 123g으로 매우 많은 편이다. 피아트는 미국에서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위반해 약 100만 대 차량을 리콜하기도 했다. 피아트가 올해 구입한 배출권 11억유로 가운데 절반이 테슬라로부터 구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액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테슬라와 배출가스 크레디트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12개 주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려는 기업에 대해 일정량의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카를 판매하도록 하는데, GM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올해 2분기에만 테슬라가 탄소배출권을 다른 자동차 기업에 팔고 거둬들인 수익이 4억2000만달러(약 4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1억1100만달러)의 3.5배나 된다. 덕분에 테슬라는 2분기 1억4000만달러의 흑자를 냈다.
급등하는 배출권 거래 가격
크레디트 수요가 늘어나면서 배출권 거래는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유럽의 배출권 선물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2005년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한 이후 14~15년간 배출권 가격은 기껏해야 3~4유로에 그쳤다. 그러다가 EU가 자동차에 대한 배출 규제를 대폭 강화하기로 하면서 시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U가 올해 9월부터 1년 동안 배출권 발행을 줄일 것이란 보도도 영향을 미쳤다. 목표치에 미달하는 기업들이 급하게 배출권 구입에 뛰어들었다. 지난 7월 배출권은 t당 30.8유로로 1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선 당분간 탄소배출권 거래가 더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럽자동차산업협회는 3월 EU위원회에 새로운 표준의 이행 시기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EU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생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폭스바겐은 2025년 세계 판매대수의 20%가량을 전기차로 채울 방침이다. GM도 2023년까지 20종류의 전기차를 생산하기로 하고 테슬라 등과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독일 다임러 역시 2030년까지 판매하는 승용차의 절반 이상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로 바꿀 계획이다. 모건스탠리는 2040년 폭스바겐이 연간 1120만 대의 전기차를 팔아 1위 업체가 되고 도요타와 테슬라, GM이 뒤를 이을 것으로 내다봤다.
호주 등은 환경규제에 소극적
정작 세계 1위 탄소배출국인 중국은 탄소를 줄이는 데 소극적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3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60년까지 제로로 만들겠다며 먼 미래의 목표처럼 이야기했다.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어서 선진국이 먼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주도 국내 석탄산업이 사라질 수 있다며 중국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관건은 탄소 배출량 2위 국가인 미국의 움직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탈퇴가 정식으로 발효되는 날은 차기 미 대통령 선거일 다음날인 올해 11월 4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면 파리협약 탈퇴는 공식 인정되지만,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되면 탈퇴가 중단되거나 유보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든 후보는 미국의 파리협약 가입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가 당선되면 미국에서 전기차 생산이 빨라질 수 있다. 정작 일부 전문가들은 전기차 혁신을 이끌어갈 값싼 배터리 개발이 이뤄지면 선거 결과와는 상관없이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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