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요구로 타사 제품 납품했더니..."조달계약 위반" 날벼락

입력 2020-09-27 13:45   수정 2020-09-27 13:52

‘직접 생산한 제품 말고 다른 회사 완제품을 구매해 납품하라’는 공무원의 말만 듣고 납품했더라도 직접생산확인 증명이 취소될 수 있다.

CC(폐쇄회로)TV 제조 중소기업인 A사는 2016년 조달청이 발주한 충북 한 군청의 CCTV 구매·설치 사업을 낙찰받고 자사가 만든 제품을 납품하려고 했다. 하지만 군청 담당 공무원은 A사에 "(CCTV가) 기존 시스템과 호환돼야 한다"며 자신이 소개한 특정 업체에서 완제품을 구매한 뒤 납품해달라고 요구했다. A사는 공무원의 말에 따라 다른 회사 제품을 구매해 납품했다.

감사원은 2018년 이런 비리를 파악해 담당 공무원을 검찰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고 해당 군청에 정직 처분을 요구했다. 문제는 2019년 7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직접 생산한 제품을 납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A사의 '직접생산확인' 증명을 취소하면서 불거졌다. 직접생산확인이란 공공기관이 조달계약을 맺을 때 해당 중소기업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지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한 제도다. 제조 능력이 없는 업체가 다른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고 수수료만 받는 행위 등을 막기 위한 취지에서 도입됐다.

A사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회사 측은 담당 공무원이 다른 회사 제품을 구매해서 납품하라고 지시했고 자사는 그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직접생산확인을 취소하는 것은 '신뢰보호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뢰보호의 원칙은 행정기관이 내린 행정적 조치에 대해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행정법상 일반 원칙이다. 다시 말해 행정기관이 믿음을 줄 수 있을 만한 공적인 견해표명을 했고 그 견해표명이 정당하다고 신뢰한 사람에게는 귀책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조미연)는 A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사가 조달청과 맺은 계약에서 군청은 수익자에 불과하다"며 "군청이 다른 업체의 제품을 납품하라고 요구했더라도 A사는 조달청과의 계약 내용대로 이행하겠다고 사전에 제안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정부 조달계약이 거치는 엄격한 절차와 투명성, 공정성 요구에 비춰보면 군청 감독관의 요구만으로 계약내용이 변경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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