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금융권은 ‘펀드’로 시끄러웠다.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젠투 등등. 낯선 명칭의 사모펀드들이 줄줄이 사고를 쳤다. 처음부터 사기에 가까웠다. 옵티머스 펀드는 ‘편입 자산의 95% 이상을 공공기관 매출 채권’으로 채운다고 선전했다. 누가 봐도 ‘안전빵’ 투자였다. 하지만 돈은 딴 곳으로 샜다. 대부업체가 발행한 사모사채 등 ‘근본 없는’ 투자 상품이 빈자리를 채웠다. 5000억원 투자금 가운데 절반가량은 아예 행방조차 묘연하다. 결국 구멍이 났고, 환매 중단이라는 최악의 종착지로 달려갔다. 라임 등 문제를 일으킨 다른 펀드도 스토리는 비슷하다.
금융당국은 긴 고민 없이 손쉬운 답에 동그라미를 쳤다. ‘네가 팔았으니 네가 책임져라!’ 은행 등 판매사가 투자자 손실을 전부 물어주라고 압박했다. 100% 배상 결정은 이번이 처음. 성난 투자자들만 달래면 일단 한고비는 넘길 것이라는 계산이었을까? 손실을 촉발한 다른 여러 요인은 묻혀버렸다. 은행 주주에 대한 배임과 사모펀드 시장의 위축 등 새로운 숙제만 늘어났다. 문제를 풀려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꼬아 버린 셈이다.
정부가 제정을 추진 중인 소비자신용법도 ‘쉬운 답 찍기’에 속한다. 질문은 이렇다. “경기 침체로 금융회사 대출을 갚지 못하는 개인이 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덮쳤다. 연체 대출 증가는 불가피하다. 빚 독촉을 받는 개인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찌할 것인가?” 난제다. 연체라는 현상에는 복잡다단한 국내 경제의 취약점이 한데 뒤섞여 있다. 경기 침체에다 일자리 부족, 기업 활력 저하, 금융교육 부실, 소득 양극화 등등.
부동산 정책도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집값 급등의 원인을 ‘투기꾼’으로 단순화했다. 규제 강화, 세금 인상 등의 해답이 힘을 못 쓰는 건 예정된 결과에 가깝다. 몰락하는 전통시장을 살릴 방안을 찾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대형마트=악한 가해자, 시장상인=선한 피해자’라는 단순한 공식을 들이대는 순간 이미 정답은 물 건너 간다.
오답을 남발하면 좋은 대학 못 간다. 손쉬운 답만 찍어내는 국가도 선진국에서 멀어진다. 아직 시험 종료 벨은 울리지 않았다. 몇 문제라도 건질 시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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