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참여 희망자에게서 신청을 받아 서류심사와 무작위 추출로 300명을 실험집단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1인당 매월 52만원(2020년 1인 가구 생계급여 기준)을 2년간 지급할 계획이다. 1인당 총 지급액은 1250만원 수준이다. 소득 수준이나 취업 여부 등 전제조건은 없다.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복지정책인 기본소득의 취지에 맞추기 위해서다. 나머지 700명은 비교집단으로, 정기적인 설문조사에 응할 때마다 일회성 실비를 지급한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두 집단 간 분석을 통해 청년 기본소득이 생활방식, 고용, 삶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종합적으로 검증할 계획”이라며 “기본소득 모니터링 앱을 개발해 실험기간 변화 추이를 전 세계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초구는 기본소득과는 별도로 청년들의 근로 의욕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시행할 방침이다. 최저생계비를 확보한 청년들이 자기발전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다. 블록체인, 인공지능(AI), 크리에이터 등 수요가 많은 현행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 개편해 청년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조 구청장은 “노인은 노령연금, 아동은 아동수당이 있는데 경제적 취약계층인 청년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기본소득을 시작한다면 청년에게 먼저 적용할 수 있을지,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야 할지 직접 실험을 통해 살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조 구청장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청년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조 구청장은 “사전 검증도 없이 매년 1000억원이 넘는 혈세를 쓰는 것은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지방자치단체장의 ‘감(感)’으로 대규모 투자사업을 하는 것과 같다”며 “사실상 매표 행위”라고 했다. 경기도는 만 24세 청년에게 최대 100만원을 지급하는 데 올해 15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지급금액이 세 달간 25만원에 불과해 최저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기본소득’ 개념과는 출발부터 다르며, 만 24세에게만 지급하기 때문에 혜택을 받는 대상자도 너무 좁다는 게 조 구청장의 의견이다. 조 구청장은 “경기연구원에서 청년 기본소득에 대해 사후 만족도 조사를 했지만 평가기간이 짧고 응답자 수도 적어 보편성을 갖기 어렵다”며 “청년에게 현금 지원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는 ‘이재명식 플라세보 효과’에 취해 있다”고 비판했다.
조 구청장은 서울시가 지급하는 청년수당도 전제조건이 많아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기본소득’과는 개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34세 미만 청년에게 300만원의 청년수당을 주는 데 연 1000억원을 쓰고 있다. 중위소득 150% 미만에 미취업자라는 조건이 달려 있다.
하지만 서초구의 이번 실험이 또 다른 선심성 정책을 불러오는 계기가 될 것이란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취약계층을 위한 현행 복지정책을 없애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복지 포퓰리즘을 만드는 격”이라며 “서초구의 실험은 사실상 기본소득을 시작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재정난을 고려하면 기본소득 논의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지난해 국가부채는 1743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나타냈다. 연금충당부채를 제외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갚아야 하는 국가채무는 728조8000억원으로 700조원을 처음 넘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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