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 다시 시대의 화두가 되는 분위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정’이 아니라, ‘불(不)공정’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시대어가 됐다고 해야겠다. 공정을 정의, 평등과 함께 핵심어로 들고 나온 문재인 정부에서 공정이 의심받고 불공정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시대의, 정부 권력의 아이러니로 이런 현상이 처음도 아니지만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공정이란 무엇인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만큼이나 어렵다면 어렵고, 복잡하다면 복잡할 수 있다. 그래도 상식선에서 보면 간단하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 대부분이 안다. 공정의 문제는 한국 현대사에 어떤 고비 어떤 대목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래서 문재인 정부도 이를 정면으로 언급하면서 임기를 시작했겠지만, 적어도 이 정부에서는 젊은 층과 관련해서는 ‘조국 딸’과 ‘추미애 아들’을 빼고는 말하기 어렵게 됐다.
한경의 창간 56주년 특집 ‘2030세대 희망 모빌리티, 사다리를 다시 세우자’는 시리즈 취재물로 청년층이 호소하고 절망하기도 하는 공정, 아니 불공정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놀랍게도 ‘국민 60%가 2020년도 대한민국은 공정하지 않다’가 시리즈 처음의 제목이다. 솔직히 이걸 두고 놀랍다고 한다면 우리 사회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 정도라면 자연스러운 건가”라거나, “그렇다면 국민 40%는 공정한 사회라고 여긴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표하는 게 현실적일 것 같다.
각론으로 가면 안타까운 대목이 너무도 많다. ‘노력해도 계층이동이 불가능하고, 기회의 평등은 지켜지지 않는다’(한경·입소스 설문 조사) ‘새로운 도전을 막는 기득권 장벽이 있다’는 기류가 그렇다. ‘인턴만 예닐곱 번을 해서 부장인턴도 수두룩하다’는 대목에서조차도 쉽게 웃을 수가 없다.
‘ 노력하면 지위 상승이 가능한 사회’라는 응답이 절반인 50%가량이라는 대목에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상승의 사다리는 무너졌다는 평가가 많으니 함께 노력해나가야 할 일은 많다. 주택 얘기에서 직업과 직장까지, 청년들이 할 얘기는 너무도 많고 절절하다. 가난해도 공무 잘 하면 좋은 대학이니 안정된 일자리가 있었다는 대한민국의 전형적 성공담이 이제 끝나간다는 대목에서는 서글픔과 안타까움도 생기고, 이런 게 세대 간에도 계속 이어진다고 하는 그룹에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말해줄 용기도 선뜻 나오지 않게 된다.
‘ 개천의 용’ 시대에서 ‘가·붕·개’가 언급되는 것을 조국의 트위트에로만 귀착시킬 수도 없다. 안 그래도 ‘이생망’ ‘헬조선’부터 수저타령에 이르기까지 그런 식의 시대 비판 언어가 여럿 있지 않았던가.
다만 시리즈 두 번째의 큰 제목인 ‘개천서 용 나기, 26년 새 두 배 힘들어졌다’는 대목에서는 아찔해진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개천용 기회불평등지수'에 있는 내용이다. 기회의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변화가 없다는데, 이건 구조적인 문제인가. 이 정부가 말로만 공정과 정의를 외칠 뿐 개선노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인가. 후자가 정작 더 문제다.
특목고를 없애는 등 평준화에 주력해온 일련의 문 정부 교육 정책을 보면 후자 쪽을 전제하면서 볼 필요는 있다. “90년대 학번은 골라가던 일자리가 90년대 생에겐 너무나 좁은 취업문으로 변했다”는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현실 진단을 들어보면 “조국 사태, 인국공 사태 같은 불공정에 분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분석에도 크게 동의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역시 오도된 정책이, 솔선도 수범도 하지 못한 특권 권력 집단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고, 비판도 하는 것은 합리적인 귀결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파조의 ‘엄마 찬스’로까지 가자면 끝이 없다. 그래서 한탄만 할 수도 없거니와 냉소만 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해법은 무엇인가. 교육과 일자리다. 계층이동의 사다리 복원도, 개천에서 무수한 용이 나게 하는 것도, 저출산이나 부족한 주택 같은 문제도 일단은 이 두 가지가 순조롭게 되면 하나씩 해결된다. 원래, 결혼과 가정 꾸리기, 2세를 낳고 기르고, 안정된 직업 구하기, 안전하고 편안한 주택 마련은 어떤 시대 어디서도 쉬운 과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은 개인 최대의 궁극적 과제일 수 있다. 다만 개인의 노력이나 역할과 별개로 사회가, 국가가 여건 마련을 위해 제대로 된 노력을 할 필요는 있다.
그 관문이 열려 있는 교육 시스템과 최대한 넉넉한 일자리다. 잘나고 빼어난 능력자는 그에 맞게, 그보다 조금 못하면 그 형편에 맞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 기반으로 진학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자면 수월성 교육도 인정돼야 한다. 그에 앞서 공교육이 정상화돼야 한다. 학교를 엉망으로 만들어둔 채 교육의 기회보장은 헛구호다.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고, 더 생겨나게 해야 한다. 어떻게? 버젓한 일자리,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가 아니라 세금을 내는 일자리 만들기, 시장과 기업을 통한 생산적 고용창출에 대해서는 한경이 사설을 통해 너무도 많이 주장하고, 제안하고, 촉구해온 게 있다. 다시 언급하기엔 횟수도 분량도 너무 많다. 최근 수년간 한경 사설 그대로 우리 경제가 가는 것이야말로 희망이겠지만, 최소한 대체로 큰 방향에서라도 그대로 가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일자리가 생긴다. 그렇게 교육의 사다리가 복원되고, 민간의 좋은 일자리가 시장과 기업에서 생기면 불공정 논란도 크게 가라앉을 것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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