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S&P500 기업들이 보유한 무형자산과 유형자산의 격차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미국 사모펀드(PEF) 운용사 칼라일그룹 분석에 따르면 1975년만 해도 존재감이 미미했던 무형자산은 1995년 유형자산의 두 배가 됐다. 2005년에는 4배, 2018년에는 5배로 커졌다. 그만큼 기업 자산에서 부동산 등 유형자산보다 아이디어, 브랜드, 연구개발(R&D), 콘텐츠, 인적자원 등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코로나19로 디지털 플랫폼, 소프트웨어 등 무형자산의 가치가 더욱 부각되면서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줌 등의 주가가 올해 급등했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은 사무실 같은 유형자산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그 결과 무형자산 투자 및 관리가 기업 경영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남다른 무형자산을 갖춘 기업들이 코로나19 이후 거둔 성과는 눈부실 정도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핵심 무형자산인 주행 소프트웨어는 R&D 비용이 많이 들지만 설치 비용은 적게 들기 때문에 높은 이익률로 이어질 수 있다. 테슬라의 기업가치(3963억달러)는 각각 일본과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업체 도요타와 폭스바겐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
전 세계에서 운영하는 디즈니랜드 등 초대형 유형자산을 두루 갖춘 월트디즈니의 시가총액(2221억달러)은 넷플릭스(2358억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월트디즈니가 넷플릭스와 비슷한 스트리밍 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 등을 구축해둔 덕에 그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말 상장을 앞둔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호텔체인 메리어트(321억달러) 수준인 300억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승차공유, 숙박공유 등 유형자산 보유량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PBR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업이 증시에 줄지어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런 현상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또다시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제이슨 토머스 칼라일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PBR이 높은 기업, 즉 보유자산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된 기업일수록 최근 10년 동안 증시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상위 10% 고(高)PBR 기업은 평균적으로 연 수익률 18%를 올렸다. 반면 저PBR주, 이른바 저평가된 가치주는 같은 기준으로 연평균 수익률이 5% 미만에 그쳤다.
다만 자산 경량화 경제가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인지, 증시에 낀 거품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말에 불과한지는 아직 논란의 대상이다. 카바나처럼 자산 경량화를 이룬 기업 중 상당수는 여전히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 소비자에게 주는 편리함 같은 유형자산의 가치를 폄하할 수 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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