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시장 혼란에 대해 홍 부총리가 느끼는 압박감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전세 매물의 씨가 말라 ‘전세난민’이 속출하고, 전셋값 급등세가 이어지는데도 정부는 근거도 없이 “몇 달 있으면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공언해온 터다. 이런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울 전셋값은 67주 연속 상승세다. 공염불로 끝나버린 ‘소주성(소득주도 성장) 기우제’와 다를 게 없다. 홍 부총리 개인적으로도 전세 살던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 집주인이 거주하기로 해 집을 빼 줘야 할 형편에 놓였다고 한다. 전셋값이 뛰어 주변에서 집을 구하기도 녹록지 않아, 공적·사적으로 그에게는 ‘전세’가 최대 골칫거리가 된 셈이다.
하지만 올해 집값 상승률이 전국 최고인 세종시(35.8%)의 아파트 분양권을 보유하고, 은퇴하면 연금도 따박따박 받을 홍 부총리가 무주택 서민들이 느낄 절망감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세절벽’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 8월 사상 처음 5억원을 넘었고, 지난달엔 5억1707만원으로 더 뛰었다. 서울에서 전셋값 10억원이 넘는 전용면적 84㎡짜리 아파트는 이제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 출퇴근 시간이 한참 길어지고, 아이들은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된 가족이 수두룩하다. 그나마 전셋집이라도 구했으면 다행이다. 서울·수도권 전역을 다 돌아다녀도 전세를 못 찾은 이들이 월세로 떠밀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 상승률은 4년9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다세대·빌라 임대차 시장도 들썩이는 실정이다. 이런 난리통이 따로 없다.
일찌감치 전문가들이 해외 사례를 들어 임대차법의 부작용을 예견했고, ‘전세의 월세화(化)’를 우려한 윤희숙 의원의 ‘5분 발언’이 국민 공감을 얻었음에도 모두 무시하고 밀어붙인 것은 정부·여당이다. 그 정책실패의 쓴맛을 지금 서민들이 톡톡히 보고 있다. 행여 전세시장 안정이란 미명 아래 또 다른 반(反)시장 포퓰리즘 대책을 궁리할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그 결말이 어떨지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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