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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엔 독감 백신 제품이 상온에 노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독감 백신은 2~8도에서 냉장 보관하는 게 원칙이다. 상온에 두면 단백질이 망가져 효능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국가백신을 전국 보건소와 병·의원 등 의료기관에 유통하는 역할을 맡은 신성약품이 사고를 쳤다. 유통 과정에서 일부 제품이 상온에 노출됐고, 이 때문에 물백신 우려를 낳았다. 질병관리청은 독감 국가백신 접종 시작 바로 하루 전인 지난달 21일 곧바로 접종 중단 조치를 취했다.
물백신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재발 위험은 여전하다. 왜곡된 국가백신 입찰제도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입찰가가 원가에도 못 미치다 보니 제조사와 유통사 모두 적자를 떠안는 구조다. 유통 관리가 제대로 되기 어렵다. 근본적 개선만이 해결책이다. 방역당국의 안일한 대처도 사태가 악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질병청은 지난 22일 의료기관 전산시스템 등을 통해 접종 중단을 공지했지만 이를 확인하지 못한 일부 의료기관 등에서 접종이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렸더라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백신의 부작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물백신 때문에 독감에 걸릴 위험을 낮출 방안에 대한 언급은 쏙 뺐다.
정확한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얀 입자는 제조 과정이나 유통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된 한국백신의 ‘코박스플루4가PF주’를 맞은 접종자는 1만7812명이다.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 대상자 7018명과 일반 유료접종자 1만794명이다. 제조사인 한국백신은 백신 61만5000개를 자진 회수하기로 했다.
두 건의 사고로 폐기되는 백신은 약 107만 명분이다. 국가백신을 포함한 국내 공급 물량(2964만 명분)의 4%에 못 미치는 분량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독감 접종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폐기 물량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독감 백신은 생산에만 3~4개월이 족히 걸린다. 올 겨울철 접종 물량을 다시 생산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재발 사고를 막아 백신 추가 폐기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유일한 방책이다. 방역당국의 촘촘한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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