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업계에선 ‘TSMC 쇼크’란 반응이 나왔다. 국내에선 재생에너지만 따로 공급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처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신경 쓰는 기업이 RE100 제품만 공급받겠다고 선언하면 대응할 방법이 마땅찮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이들이 협력 업체에도 RE100을 독려한다는 데 있다. 기업 생태계가 협업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시대인 만큼 공급망 전체가 RE100을 실천해야 한다는 논리다. 부품·소재 업체들의 목소리는 다르다. 말이 독려지 ‘압박’과 다름없다는 항변이다.
국내 기업에도 RE100은 ‘발등의 불’이다. RE100의 선봉에 선 글로벌 기업에 부품과 소재를 납품하는 업체가 많다. LG화학과 미국에서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 GM은 2030년까지 미국 내 제조 시설의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를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BMW도 연내 필요 전력의 3분의 2 이상을 재생에너지에서 공급받기로 약속했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은 더 적극적이다. 이랜드가 국내 판권을 보유한 뉴발란스는 2025년까지 RE100 달성을 공언했다. 롯데와 국내에서 합작한 네슬레, 신세계와 협업 중인 스타벅스는 이미 RE100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국내 기업의 RE100 참여는 전무하다. 정부의 인센티브가 적고 재생에너지만 쓸 방법도 없다. 기업들의 현실적 고충을 감안해 정부가 제도와 규제 개선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미국, 유럽에 비해선 미흡한 것이 많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주가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ESG다. 글로벌 큰손 투자자들이 ESG를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지표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최대 육가공 회사 JBS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올해 ‘역대급 실적’을 기대하고 있지만 주가는 올 들어 9일까지 25% 하락했다. 브라질 삼림이 벌채된 구역에서 사육되는 소를 구매하는 기업이란 비판이 일자 노르웨이 연기금 등이 ‘투자 보이콧’을 선언한 여파다.
환경, 노동 등의 이슈를 강조하는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큰손들의 ESG 투자가 더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후보는 2025년까지 탄소조정세를 도입하는 공약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많이 쓰는 나라의 물건을 수입할 때 무거운 관세를 물리는 것이 골자다.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가 ESG 규범을 준수하는 기업에 지원을 늘리면서 시중 자금도 해당 기업으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이고운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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