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부동산 펀드들이 일본 오피스빌딩 시장에 속속 모여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실적이 나빠진 기업이나 재택근무로 사무실 면적을 줄이려는 기업이 내놓는 빌딩을 싼값에 인수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캐나다의 대형 부동산 펀드인 벤틀그린오크(BGO)가 앞으로 2~3년간 일본 부동산 시장에 최대 1조엔(약 1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13일 보도했다. BGO는 모건스탠리 출신 투자은행가들이 2010년 설립한 부동산 펀드 그린오크가 캐나다의 대형 보험사 선라이프의 계열 부동산 펀드와 합병해 2019년 탄생한 회사다. 전세계 24개 도시에 거점을 두고 490억달러(약 56조원)의 운용자산을 굴리고 있다. 지난해 다케다제약의 오사카 본사 빌딩, 올 4월말 유니조홀딩스의 도쿄 대형 오피스빌딩을 인수하는 등 일본에서 잇따라 대형 거래를 성사시켰다.
앞서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PAG는 새로 조성한 펀드 가운데 최대 8000억엔을 4년 동안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부동산 펀드 가운데 하나인 브룩필드도 최근 도쿄에 사무실을 열어 일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펀드들이 일본 시장에 몰려드는 건 오피스빌딩의 큰 장이 서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은 기업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불필요한 부동산 자산이나 비핵심 부동산 자회사를 대거 매각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재택근무 정착으로 수요가 줄어드는 오피스빌딩도 투자대상이다. 글로벌 부동산 펀드들은 일본의 가정이 좁고 정보기술(IT) 인프라가 부실하기 때문에 조만간 오피스빌딩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BGO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호텔들을 싼 값에 한꺼번에 사들인 뒤 여행수요가 회복되면 비싸게 되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아시아 지역의 코로나19 피해가 적다는 점도 해외 자금이 몰려드는 이유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경제규모가 크고 투자기회가 많은 일본에 해외 자본의 관심이 크다는 설명이다. 소니 칼시 BGO 최고경영자는 "일본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말했다.
인수한 부동산을 몇년 후 되팔아 투자금을 회수하기도 유리한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초저금리 때문에 운용난을 겪는 연기금·공제회와 보험사 등 일본 기관투자가들이 조금이라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부동산투자를 늘리고 있어서다.
다만 부동산 자산의 가격이 점차 상승하고 있는 점은 주의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전자상거래 증가로 가치가 치솟은 물류시설은 이미 과열 조짐을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부동산 개발회사인 CBRE 일본법인의 사카구치 에이지 사장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은행의 재무가 손상되면 금융의 영향을 크게 받는 부동산 시장도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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