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경매 방식을 동원하면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독과점 폐해도 막을 수 있습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로버트 윌슨(83)·폴 밀그럼(72)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강조했다. 두 사람은 혁신적인 경매 이론을 통해 자원 배분을 효율화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미 서부의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스탠퍼드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두 교수의 동료들을 모아 화상 간담회를 주선했다.
1964년부터 56년간 스탠퍼드대에서 학생을 가르쳤다는 윌슨 교수는 “경매는 단순히 재화 공급자에게 높은 가격을 보장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원을 제대로 배분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며 “공급자가 절대 유리한 다이아몬드 원석 시장에서도 이 방식을 동원하면 독과점을 해소하면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만족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장기 기증처럼 이해관계자가 많고 윤리적인 문제가 얽혀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윌슨 교수는 “(제3세계에선) 신장 기증자가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는데도 수혜자보다 항상 가난한 게 현실”이라며 “진화된 경매 방식을 통해 진정한 가치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했다.
두 교수가 발전시킨 경매 이론은 미시경제학에 속하는 게임 이론의 일종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최고가로 낙찰받은 데 따른 ‘승자의 저주’를 피하면서 매각자 역시 적절한 이익을 얻는 방안을 고안해냈다. 윌슨 교수는 “어릴 적 토요일마다 소 또는 말 경매 시장을 구경했는데 10분 안팎의 짧은 시간에 순서대로 팔리면서 희비가 엇갈렸다”며 “우리는 다양한 변수를 대입하고 (경매 진행) 기간을 길게 잡아 판매·구매자 간 윈윈 전략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윌슨 교수에게서 박사 학위 지도를 받은 밀그럼 교수는 “라디오 주파수처럼 쉽게 팔기 어려운 공공재도 경매를 통해 누구도 손해 보지 않으면서 처분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두 교수가 제안한 경매 방식으로 1993년 100여 개의 방송·통신 주파수를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주파수 대역별로 여러 라운드 입찰을 병행해 마지막 입찰자가 남을 때까지 진행하는 방식(SMRA)을 통해서다. 특정 대역의 최고가 낙찰자는 다음 라운드부터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국가 재정에 크게 기여 했다.
탄소배출권 거래도 다르지 않다. 밀그럼 교수는 “기업들이 경매 형태의 배출권 거래를 통해 환경오염을 막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산소호흡기 가격이 치솟고 재고 역시 부족했는데, 이때 경매 방식을 도입했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며 “비상시국엔 이상적인 자원 배분이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과학의 진보로 경매 이론의 발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게 밀그럼 교수의 기대다. 그는 “인공지능의 일종인 머신러닝(기계학습)으로 새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고, 이 알고리즘이 전혀 색다른 문제도 풀 수 있다”며 “최근들어 컴퓨터 과학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다”고 했다.
윌슨 교수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밀그럼 교수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은 채 자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윌슨 교수가 문을 두드리며 공동 수상 소식을 전해줬다”고 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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