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에 상륙한 올봄, 미 수공예품 거래 플랫폼 기업인 엣시(Etsy)의 조시 실버먼 최고경영자(CEO)는 전화기를 들었다. 플랫폼 입점자들에게 핸드메이드 마스크를 생산해보라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이 엣시에 몰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끼 상품’ 같은 역할을 한 마스크를 장바구니에 담은 소비자가 엣시에서 수공예품도 구매했고, 엣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 중 하나가 됐다. 지난달 회사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제치고 S&P500에 신규 편입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주변에서 몽상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칼린이 세운 회사답게 엣시의 문화는 자유롭고 이상주의적이었다. 업무시간 중 직원들은 요가와 명상 수업에 참여했다. 성별 이분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남녀가 공용 화장실을 썼다. 커밍아웃한 직원도 많았다. 이른바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사람은 타사의 거액 연봉을 마다하고 엣시를 선택했다.
반면 2016년 말 엣시 이사회에 합류한 실버먼은 엣시의 기업문화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이베이 임원, 아멕스 소비자제품·서비스부문 사장, 스카이프 CEO 등을 지냈다. 직원이 1000명대로 불어난 엣시는 더 이상 소규모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또한 상장사로서 온갖 문제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2017년 헤지펀드 블랙앤드화이트 캐피털은 엣시의 비효율적인 경영을 지적하며 회사 매각을 요구하는 서한을 이사회에 발송했다.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 등도 지분을 매입하며 전운을 드리웠다.
결국 이사회는 6년간 재직한 CEO를 비롯한 수십여 명을 해고했고 ‘정통 기업가’인 실버먼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실버먼 신임 CEO는 매출 증대 및 수익성 강화를 위해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한편 정리해고를 진행했다. 이후 엣시는 개선된 실적을 발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과 엣시 입점 판매자들은 “그는 엣시답지 않으며 아마존과 이베이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엣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상품 공급자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또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흥미로운 사례로도 꼽힌다. 미 프리랜서 구인구직 플랫폼 기업인 업워크의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미 근로자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5900만 명이 부업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와 수입이 줄면서 지난해보다 200만 명이 신규로 부업을 하게 됐다. 이들 중 상당수가 직접 제작한 수공예품을 엣시를 통해 판매하면서 엣시의 상품도 다양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마추어들의 솜씨가 진일보하며 수공예품을 판매할 실력을 갖추게 된 경우도 늘었다.
실버먼 CEO는 “소비자는 더 적게 소비하게 된 대신 더욱 의미 있는 물건을 원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외식 등 다른 분야에서 줄어든 소비가 전자상거래로 이동했을 뿐이라는 업계의 고민이 엣시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기업 가치가 정점에 오른 것 아니냐는 우려도 실버먼 CEO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엣시 주가는 올 들어 세 배 이상으로 뛰며 시가총액 187억달러(약 21조원·16일 종가 기준)를 기록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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