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 줄인 ESG 기업, 시총 더 늘었다

입력 2020-10-18 17:22   수정 2020-10-19 01:08

세계 기관투자가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원칙을 강화하면서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적극적으로 줄인 기업일수록 기업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 기업은 이산화탄소 배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어서 글로벌 자금에 외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세계 2000여 개 기업의 2015~2018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변화와 시가총액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배출량을 적극적으로 줄인 상위 30개사의 시가총액(13일 기준)이 2017년 말보다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하위 30개사의 시가총액은 12% 감소했다.

같은 업종 내에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른 기업가치 차이가 두드러졌다.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은 4년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 줄였다. 지난 5월에는 장기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반면 뒤늦게 지구온난화 방지 대책에 착수한 미국 에너지업체 엑슨모빌은 같은 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엑슨모빌의 시가총액은 2017년 말보다 65% 급감했지만 토탈의 감소폭은 40%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일 에너지기업 에이온은 화력발전에서 송배전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바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0% 줄였다. 반면 캐나다 엔브리지는 송유관 사업을 확장해 배출량이 2.9배 늘었다. 그 결과 에이온의 시가총액이 30% 늘어나는 동안 엔브리지는 5% 줄었다.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인 넥스트에라에너지의 시가총액이 엑슨모빌을 역전하는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의 주가도 급등하고 있다.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시가총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글로벌 투자자금이 탈(脫)석탄화에 적극적인 기업을 찾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13일 프랑스 대형 보험회사 악사그룹 등 20조달러(약 2경2920조원)를 운용하는 세계 137개 기관투자가 그룹은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 수준과 국가별 규제가 강해졌기 때문에 탈석탄화 목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기업은 비용 부담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은 온난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기업은 사회로부터 도태돼 이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도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기관투자가 그룹은 투자 대상 회사 1800여 곳에 공문을 보내 5~15년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 목표를 설정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 최대 공적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은 탈석탄화 대응에 소극적인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임원 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14일 ‘2020년 포브스 가상 정상회담’에서 “지금이 미국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해볼 때”라며 “기업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수익뿐 아니라 일자리와 사회에 주는 이익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SG 투자 원칙이 강화되면서 한국과 일본 기업은 세계 기관투자가의 투자를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계 주요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8년까지 4년간 5% 줄어들었다. 반면 일본은 약 1% 감소하는 데 그쳤고 한국은 오히려 5%가량 증가했다. 유럽연합(EU)은 지구온난화 대책에 소극적인 국가에서 만든 제품에 관세를 매기는 ‘국경탄소세’를 검토하고 있다. 국경탄소세가 도입되면 유럽시장에서 일본과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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