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의 모습이 일본식 장기침체 흐름과 비슷하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고령화 여파로 노동력이 훼손된 데다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 수출 역량이 강화되면서 수출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일본식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등 구조개혁이 절실하다고도 했다.
19일 한은은 윤희숙 국민의 힘 의원실에 제공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한국 상황 평가'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던 2009년 후 한국의 성장세 둔화는 그 원인 측면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일부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면 1991~1999년 7%, 2000~2009년 4.9%, 2010~2019년 3.3%로 꾸준히 내려가고 있다.
내리막길을 걷는 한국 경제의 흐름은 30년 동안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의 양상을 닮았다. 일본의 연평균 성장률은 1981~1991년 4.5%로 고공행진했다. 하지만 1992~2002년 1%, 2003~2007년 1.7%, 2008~2011년 -0.6%, 2012~2019년 1.1%로 침체 구조가 고착화됐다. 일본 장기침체 배경은 고령화에 따라 1995년부터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줄어든 영향이 작용했다. 생산연령인구가 줄면서 민간소비·설비투자 등 내수가 위축됐고 성장 잠재력도 갉아 먹었다. 일본의 고도성장을 견인한 수출이 한국·중국에 밀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상품수출의 연평균 증가율(실질기준)은 1995~2010년 5.5%에서 2011~2019년 2.1%로 낮아졌다.
자산가격 폭락에 따른 디플레이션도 일본 장기침체를 부른 '기폭제'로 작용했다. 2001년 9월 일본의 주가가 자산거품이 정점이던 1989년 12월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자산가격이 폭락하자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하락)도 나타났다. 자산가격 폭락으로 소득과 소비여력이 줄어든 가계가 소비를 줄이자 제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결과다.
한국도 2017년을 정점으로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데다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는 것 등이 일본 장기침체와 닮은 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평균 상품수출 증가율(실질 기준)은 2001~2010년에 10.6%에서 2011~2019년 4.1%로 낮아졌다. 잠재성장률(한 나라의 노동과 자본 등을 투입해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도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한은은 한국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5.1%에서 2006~2010년 4.1%, 2011~2015년 3.2%, 2016~2020년 2.7%, 2019~2020년 2.5%로 하락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잠재성장률은 앞으로 더 낮아져 금융연구원은 2030년에는 0.97%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은 자산가격 폭락과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하지 않은 만큼 한국 경제가 반드시 일본식 장기침체로 향하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고 있는 데다 저물가 양상이 고착화되는 점을 고려할 때 일본과 다르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산가격이 과열됐다는 양상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의 분기별 주택가격 상승률(KB부동산 기준)에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뺀 결과를 보면 올 1분기 2.9%포인트, 2분기에는 1.8%포인트로 집계됐다. 올 1분기 수치는 노무현 정부 시절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2006년 4분기(5.3%포인트) 후 가장 높았다. 이 수치가 0%포인트보다 높을수록 주택가격 상승 속도가 국민소득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는 뜻이다. 소비자물가도 2017년 1.9%, 2018년 1.5%, 2019년 0.4%, 올해 0.4%(한은 전망치) 등으로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용대 한은 조사국 과장은 "일본식 장기침체에 직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제고 및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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