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시간 거래소

입력 2020-10-19 17:55   수정 2020-10-20 00:16

‘시간은 돈이다.’ 미국 독립을 주도한 ‘최초의 미국인’이라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 남긴 말이다. 그는 정치가, 과학자, 작가 등 많은 직업으로 기록돼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시간을 돈만큼 소중히 여겼을 법하다. 후손들은 무수한 업적을 기리며 그의 얼굴을 100달러 지폐에 새겨 넣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폐 속 오묘한 눈빛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봐, 지금 자네에게 중요한 건 이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시간은 금이다.’ 세월이 흘러가며 그의 명언도 조금 바뀌었다. ‘365일,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모두가 금처럼 사용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시간에 매겨지는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문득 ‘내 시간이 가장 가치 있었던 때는 언제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순간은 도대체 누가, 얼마에 사줬을까?

유년 시절 시간은 부모님의 헌신과 맞바꿨다. 당신들의 시간을 고된 일에 쏟으며 아무 조건 없이 자식을 보살폈다. 감히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다. 학창 시절 역시 일방적인 지원이 있었다. 국가와 사회는 평범했던 한 학생의 시간을 교육을 통해 사줬다. 이후 구직활동과 함께 시간에 대한 영업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회사는 내가 이전에 받아본 적 없는 큰돈을 지급했지만, 그만큼 냉정한 평가도 뒤따랐다.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은퇴는 이런 계약관계마저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퇴직 후 아무도 나의 시간을 사주지 않는다면 그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미뤄온 여행이나 취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가성비 좋은 일상을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지난 50여 년은 시간을 사고파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삶’이라는 ‘시간 거래소’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때로는 선택받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며 자리를 지켜왔다.

워런 버핏과 함께하는 점심식사에는 수십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단 3시간을 위해 많은 사람이 줄을 선다고 하니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시간이 진정 가치 있는 이유는 단순히 금액의 크기에 있지 않다. 그가 받는 비싼 점심값은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고스란히 쓰인다.

‘내 시간이 가장 가치 있었던 때는 언제였을까?’라는 질문의 답이 생각났다. 아무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분주함을 핑계로 이웃과 사회에 더 힘쓰지 못한 것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코로나19에 딸려 온 차가운 일상은 삶이 버거운 이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화려한 단풍이 지면 어김없이 매서운 추위가 올 것이다. 모든 시간은 주변을 돌보는 데서 다시 한번 공평해진다. 많은 사람의 금보다 소중한 시간이 우리 사회 곳곳에 온기로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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