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업계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초대형 계약’이다. 이 계약들엔 공통점이 있다. 인공지능(AI) 연관 반도체 사업의 역량 강화를 위한 ‘베팅’이란 점이다.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2030년 13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AI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해 많게는 수십조원을 인수합병(M&A), 연구개발(R&D) 등에 쏟아붓고 있다.
지난 7월엔 미국 아날로그반도체(빛, 소리 등의 신호를 디지털로 바꿔주는 칩) 전문 아날로그디바이스가 같은 업종의 맥심인티그레이티드를 200억달러(약 22조원) 이상에 인수하기로 했다. 중앙처리장치(CPU) 전문업체 AMD는 자일링스를 300억달러(약 33조원) 이상에 인수하기 위해 막판 협상 중이다. 계약이 성사되면 올해 M&A 규모는 100조원을 넘어선다.
반도체 기업들은 이종(異種) 업체와의 합종연횡을 통해 초기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자사 제품으로 부족한 AI 성능을 다른 제품으로 보완하려는 것이다. 자일링스 인수를 추진 중인 AMD는 일반 PC용 CPU의 경우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 서버용 CPU 시장에선 점유율이 2%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데이터센터의 핵심 경쟁력은 AI를 통한 데이터 처리 능력에서 나온다. 자일링스의 주요 제품은 데이터센터 등에서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속도를 높여주는 ‘AI 가속기’다. 이 기술이 CPU와 결합하면 AMD 제품의 경쟁력은 크게 높아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AMD의 자일링스 인수 시도는 데이터센터용 제품 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 목적도 AI 반도체 사업에서의 시너지 창출이다. 엔비디아는 AI 관련 반도체 기술을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ARM에 이식해 자율주행이나 사물인터넷(IoT) 시장 장악에 나설 것으로 업계는 예측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엔비디아의 AI·그래픽 기술이 ARM의 생태계와 결합해 지식재산권(IP)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NPU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 들어가 스마트폰의 영상·음성인식 등 AI 기반 기능에 활용된다. 예컨대 사진을 찍을 때 밝기 등 주변 환경을 인식해 최적화된 설정으로 맞춰준다. 삼성전자는 NPU의 활용 범위가 자율주행차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판단해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인텔에서 인수하기로 한 기업용 SSD(데이터저장장치) 사업을 통해 AI 반도체산업의 성장세에 올라탈 준비를 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AI 기능이 강조되면서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른 SSD 수요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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