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공수처 강행에…野 '힘빼기 법안' 맞불

입력 2020-10-21 17:20   수정 2020-10-22 01:06


여야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범위·기소권 등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미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통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공수처를 원안 그대로 출범시키기 위해 밀어붙이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측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2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오는 27일부터 출범을 위한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금의 공수처 모습 그대로 출범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자체적인 ‘야당 버전 공수처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맞불을 놓았다.
공수처의 수사 범위 문제
여야의 첫 번째 충돌지점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다. 여당은 공수처에 고위공직자와 고위공직자 가족의 뇌물공여, 폭행, 가혹행위 혐의에서부터 국회 증언감정법상 허위진술 혐의 등까지 광범위한 수사 권한을 줬다. 특히 이들의 개인적 일탈뿐 아니라 직무를 수행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과 같은 ‘직무상 위법’까지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여당은 과거 고위공직자의 직무범죄가 만연했던 만큼 이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크고, 자연스레 이런 역할을 할 공수처에 광범위한 권한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현재 실형을 살고 있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들의 위법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며 “공수처 같은 기관이 있었다면 과거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야당의 공수처안에는 수사 대상에서 직무상 위법이 빠져 있다.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개인적 부패 범죄를 넘어 직무상 위법까지 수사하는 경우 권력자의 ‘사찰기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의적 법적용의 여지가 있는 직무상 위법 문제를 대통령과 가까운 공수처가 다룰 경우 반정권 인사에겐 엄격한 법적용을, 친정권 인사에겐 너그러운 법적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은 이 점에서 공수처가 ‘말 잘 듣는 고위공직자’를 양성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의 기소권·강제이첩권 문제
공수처에 기소권과 강제이첩권을 부여할 것인가를 두고서도 여야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여당의 공수처는 검찰과 마찬가지로 기소권을 가지고 있다. 다만 판사나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 등에 대해서만 기소가 가능하다. 여당은 공수처에 이런 권한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형식적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공수처를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여당으로서는 검찰 견제를 위해선 기소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기소하지 않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라도 권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백 의원은 이날 “이전 협상 과정에서 일부 양보해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갖는 것으로 조정했다”며 “검찰이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지 않는다는 건 검찰 견제장치로서 공수처 기능을 상실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수사하는 사건을 강제로 가져와 대신 수사할 수 있는 ‘강제이첩권’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여당은 검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덮으려는 사건을 공수처가 강제로 이첩해 수사할 수 있게 되면 현재 비대화된 검찰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기소권, 강제이첩권 등을 갖는 건 외국 사례에도 없을뿐더러 헌법에도 반하는 기형적 구조라는 주장이다.

야당은 ‘강제이첩권’은 더욱 심각하게 보고 있다. 권력자를 위한 ‘사찰기구화’의 핵심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국민의힘 법사위 관계자는 “검찰이 타깃으로 하고 있는 친정부 인사에 대한 수사를 강제로 가져와서 사건을 묻는 것도 가능하고 그 반대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소권과 강제이첩권 문제에서 여당은 시선이 ‘검찰’에 가 있는 반면 야당은 ‘정권’을 보고 있는 셈이다.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법원에 다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재정신청권’에서도 차이가 있다. 여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재정신청권을 갖고 있어 이미 기관 간 재정신청권이 인정된다”고 하지만 야당은 “주요 선진국에서 찾기 어려운 기형적인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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