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가 일어났고, 중국군의 대대적 침공 탓에 전쟁이 장기화하고 분단이 고착화된 아픈 과거를 돌이켜보면 기가 막힌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와 이산가족의 생이별을 유발한 장본인 중 하나가 중국 아닌가. 그런 중국의 지도자가 한국을 불의한 제국주의 침략자의 일원으로 부른 셈이니, 이런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없다.
미국과 첨예한 갈등을 빚는 중국이 대미 적개심을 고취해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침공’을 강조하는 강경 발언을 내놓은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을 중국의 영향권 안에 묶어두기 위해서라도 6·25를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김정은도 중국군 전사자 묘지에 참배하는 등 우호관계 과시에 나섰다.
시 주석의 발언이 의례적인 것이라고 해도 도가 지나치다. 무엇보다 중국의 과거사 도발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에까지 시비를 건 것으로 그냥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외교부는 아무 말이 없고, 기껏 통일부 장관이 국감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에 “그것은 중국의 시각”이라는 입장을 내놨을 뿐이다.
편협한 대국주의·민족주의를 앞세워 안하무인 격 발언을 이어가는 중국의 멸시와 위협에 아무 대응도 못 해선 한·중 우호니, 평화와 번영이니 하는 말은 공허할 뿐이다. 중국은 G2로 불릴 정도로 군사·경제적으로 덩치가 커졌지만, 인권존중과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의 확대, 평등한 국가 관계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다. 집요한 ‘사드 보복’에다 BTS 관련 상품의 통관까지 방해하는 옹졸한 행위도 여전하다. 시 주석의 6·25 왜곡 발언에 대해 정부는 ‘규탄 성명’이라도 내놔야 ‘중국에 매달린다’는 세간의 의혹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