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속앓이하는 PEF업계

입력 2020-10-25 18:02   수정 2020-10-26 00:27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한 제조업체. 70대에 접어든 창업자는 은퇴 시점을 고려하고 있지만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고민 중. 미국 유학을 다녀온 창업자 2세는 회사를 물려받으려고 지방 공장에서 수년째 생활. 그의 배우자는 자녀 교육을 위해 해외에 머물고 있음. 약간의 노사분규 이슈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사모펀드 연쇄 사고에 곤혹
인수합병(M&A)업계가 검토 리스트 맨 위에 올려놓을 만한 기업들의 특징이다.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선호하는 회사의 전형적인 유형이기도 하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에서 가업승계를 꺼리는 이유 1위는 세금 부담이었다. 50%인 상속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평균(35.8%)을 크게 웃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중기 대표자의 23%는 60세 이상이다.

해외에서 공부한 창업 2세들은 옷에 기름때 묻는 전통 제조업보다는 ‘폼 나고 멋진’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을 원한다. 고달픈 기러기 생활에 노조도 골칫거리니 이참에 회사를 팔자고 아버지를 설득하고 싶을 것이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지분을 다른 곳에 넘기고 차익을 남기는 PEF의 타깃으로 안성맞춤이다. ‘기업 사냥꾼’이란 악명이 PEF업계에 따라다니는 이유다.

요즘엔 PEF 관계자들이 엉뚱한 이유로 눈총을 받고 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사모펀드가 연일 신문과 방송 뉴스 제목으로 오르내리고 있어서다. 자산운용사들이 소수의 자산가로부터 자금을 모아 세우는 사모펀드의 정식 명칭은 ‘전문투자형 사모집합투자기구’다. 흔히 PEF로 부르는 사모펀드는 ‘경영참여형 사모집합투자기구’다. 성격과 기능이 완전히 다르지만 통상 사모펀드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바람에 전문가가 아니면 헷갈리기 십상이다.

정작 PEF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적잖은 고충을 토로한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이 많아서인지 국내 PEF들은 여러 규제에 막혀 있다. 지분을 인수하려면 10% 이상 의결권을 의무적으로 취득해야 하고 이사도 반드시 선임해야 한다. 덩치가 큰 기업에는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회사 크래프톤이 연초에 상장 전 투자유치를 위해 지분 일부를 내놨을 때 국내 PEF들은 이런 제한 때문에 참여조차 하지 못했다. 이 지분은 홍콩계 투자회사로 넘어갔다. PEF가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사들이면 2년 이내에 주식으로 반드시 전환해야 한다. PEF의 중장기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중간 형태) 투자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걸림돌로 꼽힌다.
해외 자본과 차별은 없어야
지난 20대 국회는 이런 규제를 손질하기 위해 PEF 활성화 법안을 논의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번 국회에서 다시 안건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싶어도 사모펀드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PEF업계는 답답해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 PEF 사이에선 ‘기관전용펀드’로 이름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온다. 개인도 참여할 수 있는 규정을 바꿔서 기관투자가로만 출자자를 꾸리자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도 대부분 PEF에는 연기금·공제회나 법인만 들어가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도 없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가 내놨던 각종 지원책이 종료 또는 축소되고 있다. 연말부터 기업 매물이 본격적으로 쏟아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산업·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PEF가 맡는 긍정적인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면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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