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인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회장 별세를 기점으로 그의 업적과 어록이 널리 알려지면서 추모 분위기가 확산된 영향이 크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의 대다수 기업은 경제 발전 과정에서 족적을 남긴 창업주·총수들에 대한 번듯한 기념·추모관이 없다.
삼성이 대표적이다.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의 호를 딴 호암미술관과 아트홀은 있지만 기업 역사를 알리고 창업주를 기리는 기념관은 없다. 2017년 제일모직 옛터에 조성된 대구창조캠퍼스에 삼성그룹의 역사를 알리는 기념관 ‘삼성존’을 열 계획이었지만 답보 상태다. LG는 부산 연지동 옛 락희화학 부지 주택가에 구인회 창업주를 기리는 연암LG기념관을 세웠지만 단독주택 수준의 소박한 규모다. 현대 창업주 아산 정주영 기념관은 별도 건물이 아니라 서울아산병원 안에 조성됐다.
번듯한 기념관을 갖고 있는 해외 기업과는 딴판이다. 미국 시카고엔 석유왕 록펠러 기념관이, 일본 나고야엔 도요타의 산업기술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국의 반(反)기업 정서가 그만큼 뿌리 깊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창업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확대시키고, 경제발전 과정의 ‘공(功)’을 폄하하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로 인해 기업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 별세 이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6일 이 회장 빈소를 찾아 “정부와 국회가 이 회장 같은 일류기업가를 존중하고 높이 평가하는 사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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