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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해질녘엔 구름이 조금 있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밤하늘이 점점 맑아졌다. 지난여름의 긴 장마를 생각하면 오랜만에 천문대에 머무르다 만난 맑은 날이 무척 반가웠다. 연구실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서 아직 여명이 있지만 화성이 떠오르는 모습과 전천(全天)을 찍을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설치해 연속촬영이 되도록 했다.
밤 9시 반쯤, 밤하늘을 살펴보는 천문대의 전천 카메라를 보니 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옅은 은하수 위에 아직 여름철 대삼각형이 1.8m 망원경 돔 위에 떠 있었다. 은하수 오른쪽 끝에 낮게 목성과 토성이 지고 있었다.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전갈자리와 궁수자리는 벌써 졌다. 그런데 왼쪽인 동쪽 하늘에 생소한 밝은 별이 하나 보였다. 금성이라면 서쪽인 오른쪽에 있어야 하는데. 화성이었다. 얼마 전에 화성이 태양과 지구를 잇는 일직선에 놓이는 ‘충(衝)’의 위치를 지났는데 이때가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시기여서 평소보다 무척 밝아진다. 목성은 이미 서쪽에서 지고 있어서 이 시간쯤이면 밤하늘에서 가장 밝다. 대략 26개월 주기로 만나는 충인데, 26개월 전인 2018년 여름에도 마침 천문대를 찾은 고등학교 학생들과 밤새 별을 보면서 멋진 화성을 봤던 기억이 났다. 붉고 밝게 보이는 화성은 한동안, 적어도 10월 말까지는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밤새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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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별 별자리 중에서 유독 가을철 별자리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일등성의 밝은 별이 없어서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높게 떠오른 카시오페이아자리를 보면 페르세우스 이중성단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카시오페이아자리 옆으로 (남쪽으로) W자를 이루는 별자리 크기 정도 떨어진 곳에 안드로메다은하가 보여야 했는데, 아쉽게도 맨눈으로 찾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낮은 구름이 서쪽 하늘에서 들어오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 바빠졌다.
보현산의 서쪽 봉우리까지 여분의 카메라를 삼각대에 얹어서 나서는데 바스락거리면서 바닥을 구르는 낙엽 소리에 깜짝 놀랐다. 서쪽 봉우리로 이어지는 숲길을 걷다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가까이에서 갑자기 들리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움직임이 저절로 멈춰진다. 그래도 서쪽 봉우리에 올라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반짝이는 별을 보면 이런 두려움은 한순간에 다 잊힌다.
종종 서쪽 봉우리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사진을 자동으로 찍도록 해 두고 연구실로 돌아와 밤새 기다리기도 하지만, 요즘은 밤에도 사람이 자주 올라와서 그렇게 못 한다. 야간에 캠핑을 즐기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그냥 빙 둘러서 하늘 사진을 한 번 찍은 뒤 돌아왔다. 곧이어 구름이 많아져서 설치해 둔 카메라도 모두 챙겼다.
자정을 넘기고 나니 옅은 구름이 많아졌지만 1.8m 망원경의 관측자는 포기하지 않고 밤새 관측했다. 연구자는 관측 대상과 목적에 따라 아주 좋은 날이 필요하기도 하고, 옅은 구름에도 관측을 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만난 보현산천문대의 바쁜 밤이었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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