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부족과 해운운임 급등으로 수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적선사인 HMM이 일부 손실을 감수하고 기업들을 돕기로 했다. 대신 국내 중소기업들은 안정적인 HMM의 화물 확보를 위해 장기운송계약 및 이용을 늘리기로 했다. 해양수산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HMM과 기업들 간 상생 협력을 돕기로 했다.
천덕꾸러기서 신데렐라 된 HMM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계가 벌인 ‘선박 대형화를 통한 원가 절감’ 결쟁은 한국 해운업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표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은 2016년 8월 파산했고, 그나마 남은 HMM(당시 현대상선)의 선복량(총 적재능력)은 2016년 기준 45만TEU에 불과했다. 당시 머스크 선복량(317만TEU)의 7분의 1 수준이다. 이때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는 HMM이 세금으로 연명하는 ‘밑빠진 독’이 될 것으로 봤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망할 기업에 왜 혈세를 낭비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하지만 HMM은 최근 주가와 실적 등을 통해 이런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불황에 대비해 운항 선박을 크게 줄였다. 그런데 물동량은 예상만큼 줄지 않았다. 수요가 크게 감소하지 않은 상황에서 컨테이너를 실을 선박 부족이 심해지면서 운임이 치솟았다. 2018년 정부로부터 3조1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받아 국내 조선사들에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하고, 올해 이를 모두 인도받은 HMM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다만 수출 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선박 부족뿐 아니라 운임 급등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서다. 올해 상반기까지 FEU(1FEU는 6m짜리 컨테이너 2개)당 1500달러에서 안정돼 있던 아시아-미주노선 해상운임은 하반기부터 급등해 지난달 FEU당 3831달러에 달했다. 미국 대규모 부양책에 따른 단기 소득 증가와 재택근무 확대 등으로 인한 소비재 수요 증가, 블랙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 등 계절적 수요가 겹친 영향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돈이 있어도 화물을 실을 자리조차 마땅히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HMM-수출기업 '윈윈'
HMM은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을 돕기로 했다. 수익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배를 더 띄워 수출품을 실어 나르는 방식으로다. 당장 일부 손실을 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화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이득이라는 게 HMM의 계산이다.해수부와 중기부는 한국선주협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함께 29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수출중소기업과 국적 해운선사간 상생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HMM과 중소기업들이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해수부와 중기부는 협약기관간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각종 협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협약에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HMM 간 ‘수출 물류 핫라인’을 개설하는 내용도 담겼다. 공단이 중소기업의 긴급한 수출화물 수요를 접수·취합해 HMM에 통보하면 HMM은 우선적으로 선적 공간을 내주는 체계다.
HMM은 당장 오는 31일에 4500∼50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급 선박 2척을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또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매월 1척 이상의 선박을 추가 투입해 우리 기업의 수출 물류를 지원할 예정이다. 대신 중소기업들은 앞으로 HMM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된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아시아-미주 노선 7.9%, 한국-미주 노선으로 국한해도 27.6%에 불과한 HMM의 점유율을 장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전망이다.
문성혁 해수부 장관은 “2018년 4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이후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초대형선 발주와 같은 지원을 실시한 결과 HMM의 영업이익이 21분기만에 흑자 전환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며 “앞으로는 국적 해운기업들과 화주기업들 간 상생협력을 통해 동반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이번 협약이 배가 없어 수출을 지속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한 많은 수출중소기업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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