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운용 뒤 확 달라진 서울대발전기금

입력 2020-11-02 17:21   수정 2020-11-03 01:34

채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2월 서울대발전기금 상임이사로 취임했다. 취임 후 기금 운용 시스템을 살펴보니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5500억원의 기금을 다른 일을 겸하는 4명이 운용하고 있었다. 교수인 기금본부장과 상임이사가 있고, 회계팀장과 팀원이 전부였다. 기금운용위원회가 따로 있었지만 큰 역할을 못 했다.

투자도 원금 보장 상품에 집중했다. 채 교수는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구조화 상품은 ‘원금보장형’이라는 문구가 있으면 투자가 가능한 반면, 전 세계 지수를 담고 있는 MSCI ACWI(올컨추리월드인덱스)처럼 안전한 상품은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자가 불가능한 구조였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외부 전문가에게 돈을 맡기기로 했다. 교육부의 승인을 얻어 5500억원 중 2500억원을 위탁 운용키로 한 것. OCIO 기관으로는 삼성자산운용을 선정했다. 대학 기금의 특성상 손실을 내지 않는 것도 중요한 만큼 기대 수익률은 연 2.5~3%로 잡았다.

포트폴리오도 부동산 등 대체투자상품이 아니라 상장지수펀드(ETF) 위주로 짜 달라고 요청했다. 전 세계 자산에 포트폴리오 투자를 할 때 가장 싸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상품이 ETF라는 판단이었다.

운용 보수가 적은 대신 성과 인센티브를 도입하기로 했다. 채 교수는 “학교 재단이다보니 OCIO에 높은 보수를 지급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대신 목표 수익률 이상을 달성할 경우 성과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자산운용은 올해 목표 수익률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에서는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자산을 운용해 장학금과 연구비 등에 쓰고 있다. 하버드대기금은 별도의 투자회사 HMC를 통해 주식·헤지펀드 등에 투자하면서 연평균 11% 수익률을 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수억원의 연봉을 주고 펀드매니저를 영입할 수 없기 때문에 OCIO가 기금 운용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채 교수는 “지난해와 올해 기부금 운용의 투명성을 높인 만큼 기부금 규모가 늘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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