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지난달 30일 현대차 노조 지도부를 만났다. 지난달 14일 그룹 회장직을 맡은 이후 약 2주 만이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소통 리더십을 강조하는 정 회장과 합리적인 성향의 이상수 노조위원장이 만난 것 자체가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평가와 함께 현대차의 노사관계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위원장은 지난 1월 취임 직후부터 정 회장(당시 수석부회장) 면담을 요구했다. 지난달 14일 정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업계에서는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현대차그룹 총수가 노조위원장을 만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행사나 일정에서 마주친 것을 제외하면 정몽구 명예회장이 2001년 노조 지도부와 만난 이후 19년 만이다.
하지만 정 회장이 취임 2주 만에 노조를 전격 방문해 만남은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지금의 노사관계가 계속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며 “직접 노조위원장을 만나 변화를 이끌어내자고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조 지도부가 최근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정 회장의 마음을 움직인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을 동결하자는 회사 측 제안에 동의했고, 제품 품질을 향상시키자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근무형태 변경 등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툭하면 파업을 하고 회사의 요구에 무조건 딴지를 건 기존 노조와는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이 위원장도 “품질문제에서는 노사가 따로 없는 만큼,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며 “자주 대화를 나누고 세계 최고의 현대차를 만드는 데 노사가 함께하자”고 화답했다.
현대차는 2025년 전기차 56만 대를 생산해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2~3위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30년이 되면 세계 신차 중 40%가량이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조 지도부는 회사의 중심축이 기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등 미래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필요한 부품 수가 절반 수준이다. 생산과정도 단조롭다. 생산인력도 줄 수밖에 없다.
이 위원장은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 관련 신사업은 울산공장에 집중해야 한다”며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파워트레인 부문에서 사업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전기차 관련 신사업을 울산공장 내에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노사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 회장은 “노사관계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직원들의 만족이 회사 발전과 일치할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찾아가자”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방안을 노사가 함께 찾아야 한다”며 “회사도 노조의 요구에 항상 열린 자세로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연구직과 일반직 등 고급 인력들이 회사에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돼야 명차가 개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에 대해 현대차 노사는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회사 측은 “노조가 회사의 미래와 협력사의 생존도 걱정하는 모습으로 거듭났다”며 “새로운 노사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조도 “그룹 총수와의 만남 자체가 의미가 크다”며 “소모적인 노사관계를 청산하고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열어가야 한다”고 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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