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2년 남짓 월세살이를 한 직장인 강모(28세)씨는 최근 전셋집을 알아보다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막상 집을 구하려고보니 전세매물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반전세라도 알아보려고 했지만, 월세수준이 낮은 집을 찾기는 어려웠다.
강씨는 "한 달에 50만원씩 월세살이를 하며 모은 돈 일부와 전세자금 대출을 보태면 전세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전세는 1억원이 웃도는 오피스텔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있는 빌라 전세매물은 전세자금 대출이 불가능한 집이었다. 전셋값이 집값보다 높은 이른바 '깡통주택'이었다. 그는 "임대차법이 시행되고 전세매물이 없고 전셋값이 오르는 건 아파트만 해당되는 줄 알았다"며 "원룸에서 방 2개 전세로 옮겨볼까 했던 꿈이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서울에 직장을 잡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들이 '월세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빌라나 다세대 주택들의 전세매물이 줄어든데다 전셋값도 올라서다. 전세 계약기간이 4년으로 늘어나고 보증금 인상률도 5%로 제한된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이러한 현상은 더 심각해졌다.
아파트 세입자들까지 매물 품귀에 빌라나 다세대로 눈높이를 낮추면서, 강 씨와 같이 전세로 점프하려는 수요자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월세→전세→매매'로 이어지는 주거사다리가 사실상 끊어진 셈이다. 월급이 꼬박꼬박 월세로 지출되니 목돈을 마련하기 쉽지 않게 됐다.
신림동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신림동에는 1억~1억5000만원 사이의 원룸 전세 물량이 왕왕 눈에 띄었지만 괜찮은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최소 2억원은 준비가 돼야 한다는게 중개업자의 설명이었다.
그나마 매물로 올라온 전셋집들은 대부분 전세대출이 불가능한 물건이었다. 집주인이 해당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데다 전셋값이 높은 경우다. 이른바 '깡통주택'이 우려되는 집들만이 전세 세입자를 찾고 있었다. 전세 매물이 워낙 귀하다 보니 사회초년생 입장에서는 이러한 매물에라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신림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최근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많이 돌렸다"며 "앞으로는 전세보증금도 5%밖에 올리지 못하니까 집주인들이 차라리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그 돈으로 세금내겠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에서 빌라나 다세대로 전세집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그는 "아파트 전세는 더 없으니 근처 빌라라도 들어가려는 세입자들이 부쩍 많아졌다"며 "원룸에서 방 2~3개 있는 집으로 갈아탈 물건들이 줄었다"고 전했다.
새 임대차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7월31일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전월세물량 1143건 가운데 전세물량이 657건, 월세물량이 486건으로 전세 비중이 더 높았다.
관악구 뿐만 아니라 서울 전체적으로도 전세 비중이 감소한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의 전세 매물은 1만2193건이다. 이는 새 임대차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7월 31일에 올라왔던 전세 매물 3만8427건 보다 약 68%가 감소한 수준이다.
새 임대차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서울의 전월세 물량의 비율은 전세가 62%, 월세가 38%인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날 기준으로 서울의 전세물량은 1만2193건, 월세 1만1291건으로 거의 50대 50 수준으로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 9월27일 부터 약 보름동안은 월세 물량이 전세 물량을 앞지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용산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사회초년생 입장에서는 전세가 아니더라도 생애최초 특별공급 청약이나 역세권 청년주택등도 고민해볼 수 있지만 경쟁률이 높아 사실상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라며 "월세에서 전세로 이동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기운 한경닷컴 기자 kkw1024@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