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년 전 한 선비도 어느 날 이런 느낌을 받았다. 그는 ‘내가 굳어지고 텅 비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우울함으로 번질 때 자신만의 습관을 형성해 이를 떨쳐냈다. 그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와 《천년의 내공》을 쓴 고전 연구가 조윤제 씨의 저서 《다산의 마지막 습관》은 다산이 학문의 마지막에서 60년 내공을 완전히 비우고 새롭게 시작한 공부인 《소학》의 주요 구절 57가지를 가려 뽑아낸 책이다.
다산은 세월에 길들어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이 들면서 자신의 말년에 모든 공부를 비우고 《소학》과 《심경》만 남겨 공부했다고 한다. 두 책은 사서삼경의 좋은 구절만 선별한 책으로 사대부의 필독서였지만 지향점은 정반대였다. 《심경》이 유학의 가장 높은 경지에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심오한 구절을 정리했다면 《소학》은 가장 낮은 곳에 뿌리를 내린 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수양과 상대를 대할 때의 몸가짐을 강조한다.
저자는 “다산이 공부의 마지막에서 《소학》을 꺼내 든 까닭은 바로 ‘실천’으로 귀결되는 방식에 있다”고 말한다. 살아가면서 잊어왔던 처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자는 요지를 전한다. 다산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배지를 전전했다. 학문은 깊어졌지만 알릴 기회가 끊겼고 제자도 못 구했다. 다산은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한 삶을 부정하지 않고 끌어안았다.
저자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소학》의 핵심을 습관처럼 되뇌며 매일 저녁마다 죽고 매일 새벽마다 부활하길 바랐던 다산의 마음을 다시금 되새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