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한국 증시에서 강한 순매수세를 나타내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 얘기다. 외국인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복장의 주역이었던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중 배터리를 제외한 나머지 업종 비중을 줄이고 있다. 대신 반도체·금융·화학·호텔 등 내년 실적 개선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집중 매수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주도주가 성장주에서 경기민감주·실적개선주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달 들어 12일까지 외국인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3조8904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만 3조8003억원어치를 사들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외국인이 위험 자산으로 분류하는 한국 주식시장 비중을 높인 영향이다.
외국인은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6거래일 연속 순매수했다. 이들이 매수한 종목에는 전략 변화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인은 이 기간 삼성전자(1조4770억원)를 가장 많이 샀다. 이어 LG화학(4618억원), SK하이닉스(3855억원), 삼성SDI(2771억원), 삼성전자우(1978억원), 현대모비스(936억원), 하나금융지주(764억원), LG생활건강(719억원) 등을 순매수했다. 경기민감주가 대다수다.
외국인이 한국 비중을 높일 때는 패시브 자금 유입으로 시가총액이 높은 종목을 주로 매수한다. 하지만 이번엔 시가총액 상위권에 있는 바이오·인터넷·게임 등 ‘BIG’를 내다팔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87억원 순매수에 그쳤다. 네이버(-1207억원), 제넥신(-698억원), 엔씨소프트(-692억원), 씨젠(-530억원), 넷마블(-365억원), 등 ‘BIG’으로 분류되는 종목이 외국인 순매도 상위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상승폭이 컸던 성장주에 대한 수익 실현 전략을 취했단 얘기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당장 다음 분기에 실적이 급등할 업종이 있다면 투자자들은 당연히 그 업종에 자금을 쓸어넣는다”며 “5~10년 뒤 세상을 정복한다는 꿈을 먹고 크는 기술·성장주에 머물러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금융·철강·화학·기계 등 경기민감주가 내년 초까지는 강세를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내년 전체로 놓고 보면 에너지·철강·호텔·레저·보험 등이 실적 회복세가 뚜렷한 업종으로 꼽힌다.
금리 영향도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10일 0.962%로 4일 이후 단기간에 0.195%포인트 급등했다. 지난 3월 19일(1.156%) 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저금리 국면에서는 성장주가 높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에 거래되는 것을 시장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금리가 반등하면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미국 금리뿐 아니라 중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중국 금리도 급등하고 있다”며 “금리가 반등하면 바이오 비중이 높은 국내 성장주는 밸류에이션 정당화가 어려워져 내년 1분기까진 약세를 나타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외국인이 팔고 있는 ‘BIG’ 업종 종목 상당수가 고평가 논란에 휩싸였던 종목이다.
그렇다고 성장주가 계속 약세를 보이지는 않을 전망이다. 내년 2분기부터 다시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성장주의 가치는 명목금리가 아니라 실질금리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명목금리는 오르더라도 실질금리는 내년 2분기부터 다시 하락할 수 있다 분석이다. 김상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중앙은행 정책에 따라 실질금리는 내년 2분기부터 하락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기업들의 이익 개선세가 내년 1분기 이후로 둔화하면 다시 성장주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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