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서민에겐 단비, 어떤 서민에겐 악몽…'최고금리 인하'의 딜레마

입력 2020-11-16 09:01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16세기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는 샤일록이라는 이름의 고리대금업자가 등장한다. 샤일록은 평소 악감정을 품고 있던 상인 안토니오에게 자금을 빌려주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갚지 못하면 몸에서 살점 한 파운드를 도려낸다.” 그런데 안토니오는 돈을 갚지 못해 생살을 베어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이때 법원이 절묘한 판결을 내려 샤일록을 막아세웠다. “살을 도려내라. 대신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하라.”

잔인한 고리 대출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요즘은 ‘법정최고금리’라는 제도로 구체화됐다. 국내에서는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에 따라 대출금리가 연 24%를 넘을 수 없다. 이를 초과하는 이자는 무효이고, 이미 지급했더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 1·2금융권과 대부업체 대출은 물론 개인 간에 돈을 빌려줄 때도 적용된다.
최고금리 인하의 장점과 단점은
한국의 법정최고금리는 2002년 연 66%에서 시작해 여섯 차례에 걸쳐 2018년 24%로 인하됐다. 전반적인 시장금리가 꾸준히 하락한 데다, 서민들의 대출 상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최근 기준금리 0%대의 ‘초저금리 시대’가 굳어지면서 최고금리를 한 번 더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국회에서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임기 내 연 20%로 인하’였던 만큼 정부가 본격적인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빚으로 고통받는 서민층을 보호하자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미국 일부 주(州)와 영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도 최고금리를 설정해 둔 이유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최고이자율 규제를 도입한 나라는 76개에 이른다. 다만 최고금리 인하의 ‘속도와 폭’을 정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시장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원리로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고금리가 ‘양날의 검’ 같은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 통제’인 만큼 부작용도 있다는 것이다. 신용도가 가장 낮은 서민부터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돈 빌릴 기회를 아예 박탈당하는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고소득 직장인과 자산가들은 어차피 1금융권에서 싼 금리로 대출받기 때문에 최고금리를 조정해도 별 영향이 없다. 반면 2금융권과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서민들은 불법 사채 시장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모두 고려해 시뮬레이션을 거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한 정책이 선한 결과 보장하진 않아”
저신용자의 대출 이자가 비싼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2금융권과 대부업체는 자금 조달비용부터 은행보다 높다. 저신용자일수록 연체율이 높기 때문에 돈을 일정 부분 떼일 위험성도 금리에 미리 반영된다. 금융회사로서는 최고금리가 낮아질 때 저신용자에게 적용하던 금리를 깎아주기보다 아예 대출을 내주지 않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최고금리를 연 66%에서 연 24%로 빠르게 인하하는 과정에서 폐업한 대부업체가 1만 개를 넘었다. 이 중 일부는 불법 사채업자로 전환해 고금리 대출을 계속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업체는 정부에 등록해 관리·감독이라도 받지만 불법 사채는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불법사금융 이용자가 부담한 평균 금리는 2018년 기준 연 110%였다.

서민금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자의 대출 사유는 ‘주거비 등 생활비’(64%·복수 응답)와 ‘카드대금 등 다른 부채 돌려막기’(44%)가 주류를 이뤘다. 또 ‘창업 등 사업자금’(11.2%) ‘병원비’(10.9%) ‘자녀 교육비’(8%) 등이 뒤를 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신용자 중엔 금리가 비싸도 일단 급전을 구하는 자체가 다급한 사람이 많다”며 “풍선효과를 최소화할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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