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3분기 확정 실적을 발표했다. 어닝서프라이즈였다. 하지만 주가는 반대로 움직였다. 실적 발표 이전 6만원을 넘었던 주가는 다시 미끄러졌다. 삼성전자 측이 4분기 전망을 보수적으로 내놓은 영향이다. 6만원만 가면 다시 떨어지는 ‘6만전자’라는 오명을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11일 하나금융투자는 ‘삼성전자, 연말 전에 팔면 안 됩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4분기보다 더 좋아지는 내년을 보라는 주문이었다. 대부분 증권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13일 삼성전자는 사상 최고 기록을 다시 썼다.
외국인은 이날 삼성전자를 5785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지난 5일부터 7거래일 연속 순매수 행진을 이어가며 총 2조61억원어치를 쓸어담았다. 이날 외국인은 장중 한때 6만2500원에 쌓여 있던 120만 주 이상의 매도 물량도 순식간에 가져가 버리는 공격성을 보여줬다. JP모간과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각각 341만 주, 222만 주 이상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7거래일 연속 순매수하는 동안 개인은 2조976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수익 실현에 적극 나섰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상반기에 쌓였던 재고 소진을 위해 3분기 주문량을 줄였던 데이터센터 업체들의 디램 서버 주문량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내년 1분기 디램 가격 회복으로 반도체 업황이 개선세에 들어설 것”이라는 증권업계의 시나리오가 맞아떨어져 가고 있단 얘기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모바일 디램 수요도 애플의 아이폰12 출시로 견고하고 PC나 노트북에 대한 수요도 좋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가격 메리트도 더해졌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위 가운데 삼성전자는 올 들어 13.26% 올랐다. 그동안 시장 주도주였던 배터리·바이오·인터넷 등의 상승률과 비교해선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환율이나 금리 등 대외 요인은 수급 개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원·달러 환율은 1110원대까지 내려왔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바이든 시대’에서는 약달러가 대세가 될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약달러 국면에서는 신흥국 통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낸다. 미국 금리 반등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리 반등 때는 외국인 패시브 자금이 신흥국 비중을 높이는 게 통상적인 대응이다. 환율로 인한 차익을 노릴 수 있는 한국 주식시장, 그중에서도 삼성전자로 매수세가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다른 신흥국 대비 양호한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바이 코리아’에 더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외국인 순매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연말이 오면서 삼성전자의 배당 매력도 더해졌다. 삼성전자는 내년 1분기 특별배당에 대한 계획을 내놓을 전망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순매수세가 이어지는 데 따른 파급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유가증권시장 시총 내 비중이 크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상승하면 코스피지수도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유가증권시장 밸류에이션 자체의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를 동력 삼아 코스피지수가 10년 박스권을 탈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이효석 SK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2900까지 오르려면 시총이 300조원가량 늘어야 하는데 삼성전자의 시총 비중을 고려하면 앞으로 삼성전자 시총이 100조원 정도는 올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약 8만원까지 가야 가능한 수준이다. 증권업계의 삼성전자 목표주가 평균은 7만6500원이다. 이 연구원은 “글로벌 투자업계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비중을 늘리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때”라고 덧붙였다.
고윤상/박의명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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