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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최고금리가 연 24%까지 내려오는 과정도 힘들었다. 금리 인하는 필요하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제도권 대출을 못 받을 수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최고금리를 낮추자는 법안이 다수 상정됐지만 적극 호응하지 않았다. 금융시장에 함부로 개입할 경우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은 위원장의 소신은 얼마 가지 못했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의 시장 영향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곧바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연 20%까지 낮추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은 위원장은 최고금리 인하를 거부한 지 두 달여 만인 16일 더불어민주당과의 당정 협의에서 “최고금리 인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고금리 인하는 ‘양날의 칼’이다. 연 20%를 넘는 고금리 대출 이용자의 13%(31만6000명)는 정책 실행 이후 3~4년간 금융시장을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대부업체조차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부업체들의 대출 실행률은 10% 정도다. 지금도 10명이 대출을 신청하면 그중 1명만 돈을 빌릴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고금리가 떨어지면 대부업체들은 더욱 방어적으로 영업할 수밖에 없다”며 “대부업체까지 외면하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돈을 꾸거나 불법사금융 시장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사금융에 내몰리는 사람은 금융위 추정으로만 3만9000명에 달한다. 최고금리가 연 27.9%에서 연 24%로 떨어질 때도 4만~5만 명 정도가 불법사금융에 유입된 것으로 분석됐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최고금리가 연 24%로 떨어지면서 1만2000개에 달했던 대부업체들이 8000여 개까지 줄었다”며 “대부업 영업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최고금리를 더 내리면 파괴적인 결과를 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해마다 2700억원 정도를 풀어 서민금융에 공급하겠다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최고금리 인하 시행 시기를 내년 하반기로 늦춘 배경에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담겨 있다는 게 금융권의 해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 뒤에 최고금리를 내려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급전이 필요한 저소득층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대책을 불쑥 내놓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출신의 한 교수는 “시장은 참여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지금은 계획 경제를 하듯이 몰아붙이고 있다”며 “선의로 포장된 정책이 시장 메커니즘을 죽이고 국민 대부분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서/오형주/박진우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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