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山 깎는 문제' 내세워 김해신공항 폐기…국제검증 뒤집어

입력 2020-11-17 17:29   수정 2020-11-25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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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김해신공항 건설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하라’는 주문을 내놓은 핵심 이유는 안전이다. 2016년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안전을 위해 인근 산을 깎을 필요가 없다”는 진단을 내놓고 국토교통부가 이를 토대로 2018년 말 기본계획을 짰지만 검증위는 이를 뒤집었다. 하지만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오봉산 임호산 경운산 등 인근 산을 그대로 두면 안전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증명도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만약 산을 깎아야 한다 하더라도 기본계획에 담을 필요가 없으며 더군다나 실행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나가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검증위의 결론이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항 건설비 등 경제성 평가에서 1위였던 김해신공항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실상 폐기되자 ‘제2의 월성 원전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대두되고 있다.
“법적 절차 하자” 문제삼은 검증위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는 17일 검증 결과를 발표하며 “우리는 기술자·전문가 집단으로, 정치적인 고려는 일절 하지 않았다”는 점부터 강조했다. 과학적·객관적으로 검증한 결과 정부의 김해신공항 계획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밝혀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검증위가 지적한 문제는 크게 네 가지다. 김해신공항 계획이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아 중대한 흠결이 있고 △비행 절차 수립 기준에 맞지 않으며 △추가 유도로 설치 시기가 잘못 설정됐으며 △소음 피해 평가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사업의 근본적 검토가 필요한 직접적인 이유는 법적 절차 미준수다. 김해신공항 항로 근처엔 항로 관련 기준보다 높은 오봉산 임호산 경운산 등 산이 있다. 국토부는 이들 산을 깎지 않아도 운항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기본계획을 짰다. 하지만 검증위는 이것이 잘못됐다고 봤다. 김수삼 검증위원장은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한 결과 ‘기본적으로는 항로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 원칙이고, 남겨놓더라도 관계 지자체와 협의해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며 “산악장애물 존치를 전제로 수립된 계획은 법 취지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장애물 제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검증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검증위 “비행 절차 수립 과정도 문제”
기본계획의 비행 절차 수립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계획에 따르면 일부 비행기 운항 구간에서는 재래식 항법과 전자식 항법인 ‘성능기반항법’을 혼합해 사용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검증위는 “일반적인 절차 기준상 항법 혼용은 맞지 않기 때문에 비행 절차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ADPi는 항공기의 신속한 이동 등을 위해서는 신항공 서쪽에 항공기 유도로를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토부는 유도로를 개항 이후 추가 설치하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하지만 검증위는 “개항 때부터 서쪽 유도로를 설치하지 않으면 운항에 지장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신공항 건립에 따른 소음 피해가 과소 평가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관련법 개정으로 2023년부터 소음평가 기준이 변경될 예정인데, 정부는 현재 기준으로 소음 피해를 측정했다는 것이다.
“검증위 결과 너무 허술해”
하지만 검증위 결과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6년 ADPi는 김해신공항을 비롯한 후보지 평가 점수를 40개 세부 항목별로 상세히 내놨다”며 “이를 뒤집는 발표를 하면서 구체적인 평가 점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재검토 판단의 핵심 근거인 산악장애물 제거 여부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ADPi는 ‘주변 산을 깎지 않아도 비행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계획안을 마련했다”며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ADPi가 내린 결론을 검증위가 뒤집었다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철저하게 검증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도 “설사 산악을 깎아야 한다고 해도 기본계획 수립 후에 지자체와 협의하면 된다”며 “협의를 마친 뒤 계획을 짜야 한다고 하면 기존의 대부분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부적격이라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서민준/장현주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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