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9월 말 시중 통화량(M2·원계열)은 3132조3008억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지난해 말과 비교해 7.51% 늘었다. M2는 현금과 요구불 및 수시입출금식 예금에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같은 단기 금융상품까지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다. 각국의 통화량을 가늠할 때 쓰는 대표적 지표로 꼽힌다.
한국의 통화량 증가율은 세계 주요국 10개국 가운데 상위 9위로 집계됐다. IMF 기준 유동성(M2) 통계(조사 대상 시점은 나라별로 7~10월로 차이)가 있는 세계 경제규모 상위 10개국(미국 일본 유로존 브라질 러시아 한국 호주 멕시코 인도네시아 남아공)을 추려 집계한 결과다. 이들 국가 가운데 통화량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대규모 양적완화를 추진한 미국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지난 10월1일 기준 시중 통화량(원계열 기준)이 17조7801억달러로 작년 말에 비해 21.9%(3조3749억달러) 늘었다. 미국에 이어 호주(12.39%) 브라질(11.59%) 남아프라카공화국(11.22%) 러시아(9.74%) 인도네시아(9.61%) 멕시코(8.96%) 유로존(8.78%) 한국(7.51%) 일본(5.82%) 순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부동산시장 과열의 원흉을 유동성으로 꼽고 있다. 김현미 장관은 지난 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중에 유동성이 굉장히 많이 몰리면서 전세대출이 급증했다"며 "전체적으로 전셋값 상승에 결합돼서 나타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장관 등의 분석이 맞다면 한국보다 시중 유동성 증가율이 다른 나라의 집값 상승률은 더 높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집값 상승률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 세빌스에 따르면 시장가치가 상위 5% 수준으로 비싼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서울의 경우 올 들어 상반기 말까지 5.5% 올랐다. 세계 주요국 도시 28곳 가운데 모스크바(5.5%)와 함께 상승률 공동 1위에 올랐다. 베를린(3.1%), 도쿄(2.2%), 파리(1%) 등도 가격이 증가세를 나타냈다. 반면 런던(-0.1%대) 샌프란시스코(-0.1%대) 케이프타운(-1%대) 뉴욕(-1%대) 시드니(-4%대) 등은 마이너스 증가율을 나타냈다.
경제학자들은 불어난 유동성이 한국 집값 과열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유동성보다는 정부 경제정책의 영향이 더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 8월 한국경제학회가 경제학자 37명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경제학자 4명 중 3명이 수도권 집값 급등 원인으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꼽았다. 이 조사에서 ‘수도권 주택가격의 폭등이 재건축 억제로 공급이 부족한 가운데 양도소득세 중과 등으로 매물이 감소한 탓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답변자 76%가 동의했다. 당시 설문조사에서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도권 선호지역에 공급이 줄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며 “수요·공급의 경제원칙을 반영하지 않고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도 '유동성이 주택 가격을 올린 결정적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 "유동성 외에 집값 상승 기대심리와 수급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늘어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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