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로버트 보크의 대법관 임명이 미국 상원 인준에 실패했다. 당시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 지명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지난 행적은 대통령보다 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지나치게 엄격한 카르텔 판결에 반대하는 학자였다. 대기업은 효율이 높아 저렴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소비자는 이를 통해 이득을 얻을 수 있어 소비자 복지가 향상될 수 있다는 근거로 소비자가 이득을 누릴 수 있다면 인수합병을 저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인수합병이 이뤄졌고,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는 대형 합병에 대해 이전보다 관대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소송은 기업의 대형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PC시장, 운영체제 부문의 독점, 운영체제와 검색엔진의 결합에 관한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사실상 독점이라고 판결하면서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부문을 분리할 것을 명령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에 대한 항소에서 워드, 엑셀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윈도에서 실행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독점 판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엄격했던 반독점 판결은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정보기술(IT) 버블이 형성되고,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기업의 시장이 국내에 국한되는 경우가 점점 줄었다. 국가의 규제 당국은 자국 기업의 몸집을 왜소하게 만드는 조치에 소극적이기 시작했다. 세계화된 추세에서 자국 시장에서 외국의 경쟁자들과 싸워야 할 국내 기업의 몸집을 줄이는 일은 자칫하면 국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IT 기업을 중심으로 거대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낮은 이자율과 기술플랫폼, 그리고 빅데이터를 꼽을 수 있다. 이자율은 지난 4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지면서 금융시장과 경제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이자율을 무기로 사용한 결과다. 적은 대가를 치르고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미래의 이익을 앞당겨 미리 사용하고, 부채를 먼 미래로 미루는 것을 의미한다. 저금리 상황에서 저축이나 수입이 증가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돈을 빌릴 수 있으니 기업과 정부가 투자를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생산과잉이 발생하고, 비생산적인 투자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 어차피 좋은 일은 금방 일어나고, 나쁜 일은 나중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수합병이 최근 수십 년 사이에 급증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유망한 벤처기업을 막대한 자금으로 인수했다는 소식은 오늘날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에 IT플랫폼이라는 마법까지 더해지면 기업의 거대화는 가속화된다. 고객에게 자신들의 플랫폼을 무료로 혹은 저가에 제공하고, 기업들의 의존도를 높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부킹닷컴은 자사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예약 건당 10~25%의 수수료를 책정하고, 앱 상단에 노출되기를 원할 경우 60%의 수수료를 책정한다. IT 기업이 거대기업을 넘어 공룡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 과정에서 쌓인 빅데이터는 기업의 커진 몸집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고객의 구매습관, 잠재적인 관심사 등을 분석해 항상 경쟁기업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
IT 중심으로 거대기업 출현
사회와 공감할 수준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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