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사이에서 거의 ‘사이비종교’ 같은 인기를 얻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스트리트패션 브랜드 수프림을 두고 한 얘기다. 1994년 뉴욕의 작은 스케이트보드·의류 가게에서 시작한 수프림이 고급 패션 브랜드로 성장해 지난 9일 VF코퍼레이션에 인수되면서 21억달러(약 2조3400억원) 가치 평가를 받았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제비아(사진)의 독특한 경영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매장 가장자리 위주로 옷을 잘 정리해 진열하고, 통로 쪽은 넓게 비워 손님들이 스케이트를 탄 채로도 매장에 들어올 수 있게 했다. 스케이트 애호가들이 제품을 사지 않고 잡담만 나누다 가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저녁엔 파티를 열 수 있도록 매장을 내주기도 했다. 이 덕분에 수프림 매장은 스케이트보드 애호가들이 모이는 문화공간으로 발전했다. “고객을 존중하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융화되려고 했다”는 게 제비아 CEO의 설명이다.
수프림은 다른 업체보다 좋은 원단을 쓰고 더 비싼 가격에 파는 차별화를 시도했다. 제비아는 GQ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정작 스케이트 애호가들은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싶어 하는데, 기존 브랜드는 ‘너저분한 게 전형적인 스케이트 애호가 스타일’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비아는 이 같은 전략을 정규 패션 컬렉션에도 쓰고 있다. 수프림은 정규 시즌마다 컬렉션 제품을 미리 공개하지만, 그 제품을 언제 살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시즌 중 매주 특정 요일을 정해놓고 제품군 일부만 깜짝 판매한다. 기습적으로 한정판을 내놓는 이른바 ‘드롭데이’다. 한 제품을 사고 싶은 이들은 시즌 첫 주부터 제품이 판매될 때까지 매주 수프림 웹사이트를 들락거려야 하는 식이다. 살 수 있는 물건 수량도, 날도 한정적이다 보니 온라인 등에선 입소문이 더욱 커졌다. 수프림이 처음 내놓은 ‘드롭데이’ 전략은 최근엔 버버리 등 명품 브랜드도 따라 하고 있다.
수프림은 독특한 협업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작년엔 식품기업 나비스코와 손잡고 한정판 오레오를 출시했다. 쿠키 중앙에 ‘오레오’ 대신 ‘수프림’ 로고를 새기고, 쿠키 색도 오레오의 전통색인 검은색 대신 수프림 브랜드 상징인 빨간색을 썼다. 이 제품은 쿠키 세 개들이 한 봉지에 8달러로 기존 오레오 개당 가격 대비 약 30배 값에 출시됐지만 뉴욕 매장에서 판매 당일 ‘완판’됐다.
2018년 8월 13일자로 나온 수프림 협업 한정판 뉴욕포스트도 유명한 사례다. 신문 1면과 맨 뒷면에 아무 기사도 없이 수프림 로고를 찍어 내놓자 당일 인쇄본 23만 부가 완판됐다. 신문을 구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한 이들이 새벽부터 배달 트럭을 쫓아 달리기도 했다. 이 신문은 정가 1달러(약 1110원)짜리지만 요즘도 이베이에서 60달러(약 6만7000원) 선에 팔리고 있다.
VF코퍼레이션은 이번 인수에서 수프림 몸값을 21억달러로 평가했다. 2017년 칼라일그룹 투자 당시 수프림 가치평가액이 10억달러가량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3년 만에 기업가치가 두 배로 뛴 셈이다. 제비아는 “VF가 인수한 뒤에도 수프림은 독특한 문화와 독립성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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