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모범국’ 한국이 나쁜 쪽으로 ‘세계 1위’ 성적표를 받아든 현실이 당혹스럽다. 영국(87.7%) 미국(81.2%) 일본(65.3%)은 물론이고 노쇠한 유로존(60.5%)보다 높은 가계부채 비율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GDP 증가율(명목)을 웃돌면 소비와 경제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부정적 효과가 커지는 임계 수준의 부채비율로 국제결제은행(BIS)은 80%를 꼽는다. “과도한 부채는 항상 금융위기로 막을 내린다”(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점에서 가계부채비율 100% 돌파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급증한 가계 빚이 소비나 사업 투자보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수)과 ‘빚투’(빚내서 투자)로 대거 투입된 점이 우려를 더한다. 7월 말 ‘임대차 3법’이 시행되자마자 8월 한 달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이 11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였고, 9월에도 9조6000억원으로 역대 세 번째를 기록했다. 3분기 가계신용 증가액(44조9000억원)은 ‘빚내서 집 사라’던 2016년 4분기(46조1000억원)에 이은 역대 2위다. 오기의 부동산 정책과 무차별 재정 확대에 따른 자산인플레이션 기대감이 ‘묻지마 대출’을 부르고, 그 결과 자산거품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벌어진 것이다.
‘가계부채비율 세계 1위’는 “경제가 순항 중이며, 지금 진통은 선진 경제 도약을 위한 과정”이라고 강조해온 대통령의 진단과 상충된다. 코로나로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 상황에서 부동산시장에 내·외부 충격이 가해질 경우 가계부채는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가계부채를 적정 수준으로 낮춰 가겠다”던 정부가 정치권 눈치를 보며 오락가락 중인 점이 가장 미덥지 않다. 금융당국은 두 달 전만 해도 “시중에 돈이 말라 신용대출까지 죄는 것은 불합리하다”더니 갑작스레 “불가피하다며” 일체의 대출을 조여 중소기업·소상공인·서민 피해를 키웠다. 가계부채발(發) 금융위기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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