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이 현직 검찰총장의 직무를 배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조치를 승인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야당은 "국민은 정부 내 이런 무법 상태에 경악한다"며 "검찰총장의 권력 부정비리 수사를 법무장관이 직권남용 월권 무법으로 가로막는 것이 정녕 대통령의 뜻인지 확실히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문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 발표 직전에 관련 보고를 받았다"며 "그에 대해 별도의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추미애 장관의 조치를 사실상 승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추미애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예정에 없던 브리핑에 직접 나서 "매우 무거운 심정으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 조치를 국민에게 보고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배제 조치했다. 법무부 장관의 현직 검찰총장 직무배제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는 법무부 장관 직권으로 할 수 있는 처분으로, 추미애 장관이 명령을 내린 순간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윤석열 총장은 대검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한 점 부끄럼 없이 검찰총장의 소임을 다해왔다"며 "위법·부당한 처분에 대해 끝까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피력했다.
지난달 27일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이 라임자산운용(라임) 로비 의혹 등 주요 사안을 놓고 충돌했을 당시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가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다툼을 중재해야 한다'는 일각의 의견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그동안에도 (관련 사안에) 언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며 "감찰이나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언급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앞서 윤석열 총장이 23일 국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총선 후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임기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한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그에 대한 말씀을 들은 바 없다"고 답했다.
그는 '대통령이 이 사안에 언급하지 않은 것이 윤 총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도 "(그렇게) 해석을 해도 되는지 묻는 것이라면 드릴 말씀이 없다"며 "(윤 총장 발언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도) 제가 정보가 없어 확인해 드리기가 불가하다"고만 했다.
청와대가 방관으로 일관하자, 전날(23일)까지도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과 국민의힘 소속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 야권인사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비겁하고 무책임하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으나 청와대로부터 나온 공식적인 입장은 없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추미애 장관의 기자회견 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법무(法無)장관의 무법(無法) 전횡에 대통령이 직접 뜻을 밝혀야 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러면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민은 정부 내 이런 무법 상태에 경악한다"며 "검찰총장의 권력 부정비리 수사를 법무장관이 직권남용 월권 무법으로 가로막는 것이 정녕 대통령의 뜻인지 확실히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역설했다.
배준영 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추 장관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사유를 대지 못했다"며 "법무부가 무법부, 비법부임을 최종적으로 입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 추미애 장관의 발표문은 어느 곳보다 공명정대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법무부가 정치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다는 공인인증서 같이 보인다"며 "이제 더이상 법무부에 묻지 않겠다. 임명권자인 대통령께서 직접 입장을 밝히라"고 강조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