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생검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분석 지표는 혈중종양세포(CTC)과 혈중종양DNA(ctDNA)다.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는 ctDNA를 통한 액체생검 분야의 국내 대표주자로 꼽힌다. 2015년 국내 업계 최초로 비침습적 산전진단검사(NIPT) 서비스인 ‘나이스’로 미국 CLIA(미국실험실표준인증)를 획득해 액체생검을 상용화했다. 혈액을 통해 폐암, 간암, 유방암 등 각종 암들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사람의 혈액 속엔 다양한 장기 조직의 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DNA 조각들이 떠다닌다. 이 DNA 조각엔 선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유전병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산모의 혈액에서 태아의 세포로부터 유리된 DNA를 추출한 뒤 분석하면 출산 전에 기형아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발상으로 출시된 서비스가 NIPT다. 미국 유전체 분석기업인 시쿼놈이 2011년 다운증후군으로 NIPT 서비스를 내놓으며 DNA에 기반한 액체생검 시장이 형성됐다.
이민섭 EDGC 대표는 시쿼놈에서 2009년까지 NIPT 개발팀을 이끌며 액체생검의 상업화를 직접 담당했던 이 분야 전문가다. 이 대표는 “이미 후발주자가 많아진 NIPT로는 액체생검 기업으로서의 차별화가 쉽지 않다”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암 조기진단 시장을 세계 다른 어느 기업보다도 빠르게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검출민감도 0.1% 수준으로 끌어올려
액체생검 시장은 크게 세 분류로 나뉜다. 암 환자의 특성에 맞는 약물을 처방하는 데 쓰이는 동반진단, 항암 치료 후의 경과나 장기 이식 후의 경과를 확인하는 모니터링, 예후가 나빠지기 전에 암을 조기 진단하는 스크리닝 등이다. 동반진단과 모니터링 시장은 암 환자나 장기이식 경험자만을 대상으로 해 시장이 제한적이다. 반면 암 조기 진단은 건강검진을 하는 일반인 모두가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른 어떤 액체생검 분야보다 시장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혈액으로 암을 조기 진단하기 위해선 넘어야할 장벽이 많다. 우선 NIPT에서 요구되는 수준보다 ctDNA의 검출 민감도를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 보통 임신 10주차 산모의 혈장에 떠다니는 DNA 조각 중 5~10%가 태아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으로도 확인이 어려운 암 1기 단계에선 암세포에서 나온 ctDNA가 전체 DNA 조각 중 0.1% 수준에 불과하다. 암 3~4기 환자에게선 이 검출 민감도 비율이 5~10% 수준으로 높아지지만 이땐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돼 액체생검의 유용성이 사라진다.
EDGC는 혈장 속 전체 DNA 조각 중 ctDNA의 비율이 0.1% 수준이어도 검출 가능한 수준까지 기술 수준을 끌어올렸다. 암 1기에서도 진단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 대표는 “시중에 출시된 액체생검 서비스들은 동반진단이나 환자 모니터링을 위한 검사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어떤 암종인지를 밝혀야 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암세포에서 나온 DNA를 발견해도 어느 장기에서 나온 ctDNA인지를 밝히지 못한다면 대응이 불가능해 조기진단의 이점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감도와 특이도를 높이는 것도 관건이다. 민감도는 양성 샘플을 양성으로 판별하는 정확도, 특이도는 음성 샘플을 음성으로 판별하는 정확도다. 다른 진단 영역에선 민감도가 더 중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암 조기진단 영역에선 특이도도 중요하다.
이 대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암 환자가 아닌 사람에게서 암 DNA 조각이 검출되는 결과가 나오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민감도 50% 이상, 특이도 90% 이상은 돼야 조기진단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상업화를 위해선 특이도를 98~99%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머신러닝으로 후성유전체 분석
EDGC는 암종 별로 후성유전체 23만4000개의 메틸화 패턴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폐암, 대장암, 유방암, 위암, 두경부암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 후성유전체는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유전체에 후천적으로 영향을 미쳐 유전자 발현 여부를 조절하는 물질을 가리킨다. 암은 대부분 후천적으로 발생한 유전자 변이로 인해 발병한다. 예컨대 흡연을 하게 되면 DNA 95곳에서 메틸기가 달라붙어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는 식이다.
이 회사는 암으로 인해 돌연변이가 자주 발생하는 120여개 유전자를 골라서 변화 정도를 확인하던 기존 방식 외에 암종별로 고유한 후성유전체의 변화 패턴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방식을 액체생검에 적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후성유전체 23만4000개를 검사하면 DNA 염기서열 30억쌍을 볼 때보다 비용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면서도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며 “혈액이 아닌 침, 오줌으로도 분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후성유전체 분석을 통한 LDT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 회사는 이미 지난해 DNA 염기서열 30억쌍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홍콩에서 LDT를 통한 암 조기진단 서비스를 내놨다. 미국보다 국내에서 더 빠르게 LDT 기반 암 진단 서비스가 보급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내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암 조기진단 서비스의 판매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미국에선 지난 9월 일루미나에 80억 달러에 인수됐던 기업인 그레일의 상용화 속도가 빠르다. 이 회사는 내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허가를 받아 LDT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암 조기진단 서비스를 빨리 내놓는 기업의 경쟁 우위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AI)이 DNA 염기서열 30억쌍과 후성유전체 23만4000개의 변화 패턴을 분석한 뒤 데이터를 축적하는 머신러닝을 하게 된다”며 “상용화를 통해 더 많은 자료가 축적될수록 진단 정확도도 높아지고 유전자 시퀀싱 횟수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을 선점한 기업은 더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벌릴 수 있다”고 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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