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선 ”종부세 낼 만한 집이 있다는 게 부럽다”고 얘기를 하지만 윤씨는 집값이 오른게 달갑지만은 않다. 윤씨는 되레 강남에선 같은 면적에 전셋값이 20억원을 넘었다는 얘기를 듣고 박탈감을 느꼈다. 그는 “어차피 앞으로 계속 살 집이라 팔아서 이익을 실현할 일도 없는데 세금만 느는게 월급쟁이 입장에선 부담스럽다”면서 “수십억 전세를 사는 사람은 세금을 안내는데,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산 1주택자들에게까지 많은 세금을 거둬가는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강남권에는 어지간한 집값을 훌쩍 넘는 전셋집들이 많다.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정보시스템을 보면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는 지난 10월21일 20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서초구 반포동에선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이달들어 전세 20억원에 거래된 바 있다.
이렇게 강남 고가단지들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1주택자들의 볼멘소리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10억원대 강북 아파트 소유자는 몇백만원씩 세금을 내야하는데 20억원이 넘는 강남 아파트 세입자는 왜 세금 부담이 한푼도 없냐”, “종부세를 제외하더라도 취득세, 교육세, 재산세 등 서울 외곽 저렴한 아파트에만 살아도 나라에 내야하는 세금이 한두푼이 아니다. 강남권 자산가들은 전세 산다는 이유로 정부의 증세 기조에서 벗어나는 거냐”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종부세 납부자는 70만명을 넘어서고, 세액도 4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까지 종부세를 내지 않았던 서울 강북지역 아파트 보유자들도 올해 처음으로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들게 됐다. 국토교통부가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주택자 기준 종부세 과세 대상인 공시가격 9억원 이상 주택은 서울에서만 28만1033가구로 38.3%(7만7859가구) 늘었다.
최근 정부는 세법개정, 공시지가 시세 반영률(현실화율) 상향 등의 조치를 통해 집을 가진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다주택자는 물론 1주택자까지 부동산을 사고(취득세), 보유하고(종부세), 파는(양도소득세) 전 단계에서 세금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종부세 과세 대상이 아닌 주택 소유자들의 세금 부담도 많다. 예컨대 서울 외곽의 시가 5억원대 아파트만 구매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에 530여만원의 취득세를 내야하며 50만원 가까이되는 재산세도 부담해야 한다.
대치동의 Y공인 관계자는 “임대차법 도입 이후 계약갱신을 하겠다고 나서는 세입자들이 나오고 있다”며 “전셋값 인상 없이 4년을 보장받게 된 셈이니 대치동서 전세를 구하러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최근 대치동에선 중형면적 기준 전셋값이 17억원대에서 20억원을 넘는다.
오랜 기간 무주택으로 살다가 결혼 7년차에 서울 강서구에 오래된 아파트를 매입한 직장인 박모 씨(41)는 “전세 계약이 끝나면서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매물이 사라져 울며 겨자먹기로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비속어)해 간신히 집을 샀다”며 “1주택자 중에선 거주 불안으로 집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 씨는 “상황이 이런데도 강남의 비싼 전세를 사는 사람들까지 국가가 나서 임대 기간과 비용을 보장해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정부는 왜 전셋값을 끌어올려 집을 살 수 밖에 없게 만들어놓고 모든 부담은 주택 소유자에게만 지우냐”고 호소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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